내가 본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좁은 문에 고색은 창연
형제여 잘가거라
주의 이름 먼곳에
발행일1960-02-07 [제215호, 2면]
1956년 9월 하순. 오늘은 파리외방전교회 젊은 신부 열 한분이 고국을 떠나 극동 각국으로 향발하던 날이다. 파리의 오후는 한가함이 없다. 가람마다 무엇이 바쁜지 남을 쳐다보는 일이 없다. 남을 생각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 같다. 「본 바르세」백화점 앞은 저녁장 보러 나온 부인네들로 소란하다. 백화점 안은 탐스러운 물건들로 꽉차있다. 금발미인들이 백화점 길가까지 나와서 제각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생선이나 채소를 팔기에는 아까운 인물들이다. 「본 마르세」를 지나 바른편으로 굽어들면 「류 드 빡」파리외방전교회 본부가 있는 거리다.
파리 한가운데 이런데가 있었더냐 싶게 고요하다. 왼편에 「기적의 성모성심패」로 유명한 원선시오 바오로회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을 순례하고 나오는 젊은 신부는 열심히 경본을 읽으며 길을 걷는다. 지나치는 이방인을 보고 목례를 한다. 방지거회 수사가 무엇을 얻었는지 등에 잔뜩 짐을 지고 앞길이 바쁘다. 역시 성당에서 나오는 젊은 한쌍의 남녀는 혼배성사의 감격이 새로웠는지 걸음을 멈추고 「친구」를 주고받는다. 파리 한 가운데 이런 평화한 곳이 있었더냐 싶다.
이 거리를 다 들어가서 바른 편으로 꺾어들면 곧 「류 드 빡」128번지, 전교회 본부, 여기가 무수한 은인들을 우리 한국에 보내준 전교회의 모원(母院)이다. 고색이 창연한 이 좁은 문은 흡사 중국집 대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정면이 성당, 왼편에 문간집이 있고 그 맞은 편에 300년 이래 묵묵히 허다한 전교신부를 길러낸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6층 건물이 서 있다. 이 신학교를 속칭 「치명기술학교」라고 부른다. 파리시민은 학교의 학생을 빡가(街)의 「바보」라고 부르기가 일수다. 이 학교를 나온 젊은신부들이 지구의 끝을 찾아 한번 떠나면 돌아올 줄 모르고 꿈에도 못 잊을 파리를 구태어 떠나겠다는 이 젊은 「제2의 그리스도」들이 바보같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다.
문간노인에게 내의(來意)를 전하니 정원 높이 매달린 종을 몇번 울린다. 20세기에 아직도 고색이 창연한 초인법이냐고 신기해서 물었더니 50명 신부, 신학생들이 방마다 하나씩 들어있는데 먼저 층수와 다음에 방호수를 숫자로 치면 어디서든지 누구를 찾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과연 교장 하 신부께서(지금 경북 안동 계시는 동회관구장 신부님) 날라오셔서 먼저 안내해주신 곳이 『치명자의 기념실』이다. 이 회 창설이래 많은 복자 많은 치명자의 유물이며 치명의 광경을 그린 그림들이 진열되어 있다. 6·25동란때 죽음의 행열을 몇날 몇밥 별들의 찬양소리를 가만히 들으시며 한국이 천주의 나라가 될 것을 굳이 믿으시고 순교하신 신부님들의 유물들이 벌써 진열되어 있지 않느냐. 까다르 강신부님이마지막까지 몸에 지니시며 기록을 남기신 수첩이 보인다. 연필로 적은 글을 읽으려니 눈물이 먼첨 앞을 가리워 읽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치명과 관련된 것이다. 참말로 「파리 치명기술학교」다. 매십년마다 6개월의 휴가로 본국에 돌아올 수 있는 규정도 불과 백년밖에 되지않은 일이라니 불란서를 버리고 파리를 떠나는 이들 주의 젊은 용사들의 정신이 곧 이 학교의 교육정신인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열한분 젊은 신부들이 입던 그 수단 신던 그 낡은 신발들로 왔다갔다 한다. 이웃집을 가는 것 같다.
「출발식」에 앞서 그들은 정원에 모셔놓은 성모상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올린다. 참말로 이 세상에선 마지막 인사요 조석으로 찾아와서 기구하고 부탁하고 감사하던 성모상, 인간적인 회포도 많으리라. 이윽고 입당을 한 열한명 옛날은 저 제대 앞에 5,60며이 서서 출발식을 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식의 절차는 성체강복을 마지막으로 대단히 길다. 그러나 이 출발식의 최고 절정은 제대 앞에 선 그들의 발에 업대어친구하는 식이다. 구노 작곡인 「출발의 노래」를 합창하며. 총장 「르 메르」주교가 먼저 치명을 각오하고 영영 떠날 이 열한명의 젊은 신부들의 박해와 죽음을 물리치고 착한 전교신부를 운반할 이 복된 발에 친구하고 그다음으로 신부, 신학생 친구들 부형들의 순으로서 각각 친구한다. 여자 가족들은 이 식을 하지 않는다. 여자는 제대칸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식을 마친후 성당 가운데서 양친과 마지막 포옹을 한다. 이 감격적인 순간에도 가는 사람, 보내는 사람, 다 눈물 한방울 흘리는 일 없다. 성당 밖에는 뻐쓰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성당 밖에서 동창생 재학생들이 두루 손을 잡고 「전교신부 출발의 노래」를 부른다. 「형제여 잘가거라, 잘있거라, 천당에서야 맞나리, 주의 이름 먼나라에로 전하라」묵묵히 차에 오르고 차는 「리온」역으로, 남은 부모형제, 친구들은 제각기 제길로 돌아간다. 우는 사람도 정거장까지 딸아 갈려는 사람도 없다. 끈는듯이 간단하다.
파리의 거리는 어둠이 깃들고 사람들은 제각기 분주하다. 파리에는 참말로 남을 생각는 사람이 없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