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1880년대의 「런던」거리를 봉두난발을 하고 돌아다니는 초췌한 아편장이가 있었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무엇인지 중얼거렸다. 더러운 옷, 구겨진 그품이 틀림없이 여러날 밤을 한데서궁그러잤던 표적이리라. 바로 실패의 화신(化身)인듯. 사실 그는 자기가 해본 일마다 실패하였다. 신학생으로서, 의학생으로서, 병정으로서, 배달부로서까지도 다 실패했었다. 이 거지가 장차 영국 최고의 신비시인일줄이야! 그는 가톨릭으로 귀정(歸正)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일곱살 때에 셱스피어의 작품에 익숙하였고 기억력이 강하여 파들어 가기를 좋아하는 뒷날의 글 가운데 그는 영국작가들의 글을 정확하게 인용하였다. 몇시간이고 문학책을 읽고 있었지마는 어렷을 때 가지고 놀던 노리개에 대한 애착심을 잃은 적이 없었고 어른이 될 것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무서웠다. 그러나 어떠한 의미로서는 도무지 어린이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과 놀 때에도 부끄럼을 못참았고 자기 혼자 고독 가운데 처져있었다. 열한살 때에 중학교에 들어 처음으로 인간사회와 접촉하자 칠년동안을 약한체질과 괴상한 버릇 때문에 뭇사람이 웃음거리가 되어 평생 고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단정하지 못하고 시간도 안지키고 주의력이 없는 그는 교사를 비롯하여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상 사람에게 없는 정신의 나라가 있었다. 신학교에 가서는 그의 천생의 게으름증이 어른들에게 소름이 끼치게 하였고 신부가 될 목적을 포기하였다는 규정을 받았다. 이것이 그에게 견딜 수 없이 큰 타격이 되었다. 의학교로 옮겨가서도 육년동안을 강의에 안나가고 도서관에서 문학서를 탐독하였다. 의사가 못될 것을 알고 군대에 갔으나 몸이 약해서 제대당했다. 심각한 낙망과 정신혼란으로 기진맥진한 그는 돈도 없이 알음알이도 없이 장래의 희망도 없이 혼자 서울로 왔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삼년동안 그는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을 받고 도시의 거리를 홀로 헤메게 되었다. 구두장사를 딸아다니기도 했다. 거리에서 석냥도 팔앗다. 잘데도 없었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다. 몇푼 안되는 수입은 의학생 시대에 병을 앓고 나서 맛을 붙인 아편값으로 소비되었다. 이동안 그가 육체적으로나 특히 정신적으로 고통을 잊음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한 것은 사실로 이 아편의 덕이었으나 그것도 순간적이었던 까닭에 하루는 즐비하게 늘어놓은 재(灰)통 사이에 주저앉아서 치사량(致死量)의 아편을 먹으려고 하였다. 바로 그순간 신비로운 소리가 그의 계획을 중지시켰다. 자살은 단념하였을 망정 근삼년동안을 너무도 추한 거지생활 때문에 굶어죽게 되었다. 그즈음 이십전의 어린매음부의 동정을 받아 밥을 얻어먹었고 집웅밑에서 잠을 자게되어 생명을 구하였다. 그후 여러해동안 그 소녀를 찾으려고 자기가 아는 오막살이를 전부 들추었으나 「안」이라는 이름만을 남긴채 영영 만나지 못하였다. 처음으로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동정을 아끼지 아니했던 자기자신도 불쌍했던 그 『재빠르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도주자는 다라나』고 말았다. 일평생 「하늘의 사냥개」에게 쫓긴 그는 이 여성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金益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