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난 12월 26이룹터 금년 1월 8일까지 필립핀「마닐라」에서 『유네스코』와 『빡스 로마나』본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빡스 로나마마닐라대회』에 미국대표로서 참석하였던 <에드워드 J. 커크너>씨가 우리나라를 친선방문차 1월 30일 내한하여 서울 『대한가톨릭학생총연합회』의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 서울
31일(주일) 하오 2시30분부터는 서울 주교관 회의실에서 노 주교님 임석 아래 30여명의 가톨릭 학생회 출신 저명이나들이 모여서 <커크너>씨와 간단한 환담회(歡談會)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나(羅相朝) 신부는 가톨릭 지성인(知性人)들의 더 강력한 조직이 완성되어 현대적 조류(朝流)와 맞서나가야 하겠음을 강조하고 이같은 조직은 가톨릭 국제기구(國除機構)와 직접 유대를 가지는 그 기구의 한 회원의 자격을 갖추게 됨으로써 외국에서의 그것과 같은 기능(機能)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사하였다.
이어 김(金學俊=國會議員_씨가 사회르 ㄹ담당하고 가톨릭 지성인 조직에 관한 좌담회로 순서가 옮겨져서 지성인의 조직을 외국에서와 같이 직업별 단체로 체제(體制)를 세울 것이냐 혹은 한국의 실정(小數)을 고려하여 우선 지성인 「클럽」으로 발족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데서부터 진지한 토의를 해나갔으나 상당한 준비기간을 두자는 지배적 의견으로 일단 토의를 끊고 노 주교님의 말씀을 경청하였다.
노 주교게서는 『오늘날 한국 가톨릭 지성인들의 위치(位置)는 교회 내외에서 참으로 중대한 사명을 질머지고 있다.』고 전제하신 다음 평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사도직(使徒職)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의 실정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그것은 『몇해전 <요셉>이(李海南) 교수가 평신자사도직 『지역대회』(마닐라)와 「로마」에서의 『세계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두개의 평신자단체를 구성하였는데 하나는 서울시내 각 본당대표회장 1명식으로 조직된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하상(夏祥)구룹』이다. 『하상구룹』은 교육계와 문화계의 가톨릭 저명인사로 구성되어 있어 본 주교도 그 활동에 큰 관심을 보내어 온 터이다.
이 「구룹」의 착실한 발전을 인정하는 바 이를 중심으로 여러분이 바라는 지성인 단체가 구성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고 『하상구룹』은 평균년령이 높음으로 젊은이들의 별도의 모임이 있어야 할 것은 시인(是認)하였으며 『신앙은 결코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구와 또 교회에 다치는 정성으로 매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였다.
<커크너>씨를 중심으로 명동 가톨릭 학생회원들 20여명이 모여서 「빡스 로마나」 대표로 파견되었던 서(徐錫坤)군의 사회로 학생사도직 전반에 걸친 『씸포지움』이 있었다.
한편 <커크너>씨는 먼 길의 여행에 피로한 기색을 여실히 보이면서도 대구가톨릭학생들의 간절한 초청을 쾌히 응낙하고 이날밤 열차로 대구로 떠났던 것이다.
■ 대구
교육기관과 학생운동 시찰
「대한 가톨릭 학생총연합회」의 지도자 <아우구스띤> 나(羅相朝) 신부의 초청으로 내한한 <워드워드 J. 커크너>씨는 다시 「경북 가톨릭교육협회」와 「가톨릭학생연합회」의 초청을 받아 2월 1일 상오 5시반착으로 내구하였다. 커씨는 바쁜 여정중에서도 상오 10시 본사를 방문하여 가톨릭언론(言論)의 당면과 제와 전망(展望) 등 광범위한 의견교환이 있을 후 대건중고, 효성여고, 효성여대 등 각 교회학원을 시찰하고 하오 1시반 가톨릭교협(敎協)의 환영 오찬회에 임석하였고 가톨릭시보 사장실에서 가톨릭교육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하오 5시부터는 계산동주교좌본당 강당에 참집한 3백여명의 대학생 및 고등학교생을 위해 「빡스 로마나」운동에 대하여 <푸란치스코> 김(金益鐵)씨의 통역으로 1시간에 걸쳐 별항과 같은 정열적인 강연을 하였고 동7시에는 시내 삼덕동성당에서 학생지도 <요안>김(金榮玉) 신부가 집전하는 특별미사에 참여하겼다.
그리고 8시부터 동성당 구내 강당에서 「빡스 로마나」마닐라대회에 참가한 대표의 한 사람인 최(崔東哲)군의 사회로 열려진 학생회 주최 간담회에서 <커크너>씨는 미국의 가톨릭운동 개요를 말해주고 격의없는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가톨릭학연 「소화구룹」, 「팔마구룹」 등 학생단체로부터 보내는 기념품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민요와 고전무용을 감상한 <커크너>씨는 흥겨운 가운데 10시반 작별인사를 나누고 주교관에서 잠간의 휴식을 가진 후 11시50분 열차편으로 상경하였는데 2일 하오 항공편으로 「홍콩」으로 향해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