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東星中·高校(동성중고교)
오래고 榮譽(영예)로운 傳統(전통)
실력위주 교풍에 자랑도 가지가지
自主人(자주인) 길러내는 殿堂(전당)
발행일1960-02-14 [제216호, 4면]
신성한 믿음으로 기초를 하여
날마다 가다듬어 덕을 닦으며
남보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
저마다 자랄만한 힘을 기르세
우리는 크게 쓰는 일꾼이 되어
거룩한 빛을 내는 동성(東星)학교
한국 가톨릭교회의 중등교육기관으로서는 첫아들격이 되는 이 동성중고등학교는 서울 안에서도 몇째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혜화동(惠化洞) 로타리 옆에 있는 이 학교는 혜화동성당을 북쪽 옆에 두고 동편 언덕위에는 대신학교를 뒷마당에는 소신학교와 문 하나 사이로 통하고 있다.
1907년 즉 구한말(舊韓末) 이 나라 신문화의 선봉이 되고자 『소의(昭義)학교』라는 이름으로 봉래동(逢來洞)에서 그 설립을 본 후 어언 50여 성상(星霜). 물론 당초에는 초등교육기관이었으나 1920년 『소의상업학교』로 3년제 중등교육기관으로 승격하였고 얼마후 『남대문상업학교』라고 교명은 변경 5년제가 되었다가 지금의 혜화동 자리로 옮기면서 비로소 『동성』이라는 이름을 붙혀 『동성상업학교』라 칭하게 되었다가 현재 이름으로 된 것이다.
역대 교장으로는 초대 (소의학교 시절) 민강(閔疆)씨 남대문학교 시절엔 방규환(方奎煥)씨 그리고 박준호(朴準鎬)씨가 교장으로 있을 때에 혜화동으로 옮겨 동성상업이라 개명하고 그 후임이 현 부통령 장면(張勉) 박사 그 다음이 현 교장 전창기(全昌基) 선생이다.
참되고(誠實) 부지런하고(勤勉) 책임을 다하는(信義) 사람을 길러낸다는 훈육의 방침아래 중학교 12학급 고등학교 9학급에 중학교 803명 고등학교 575명의 장래 이 나라 일군들이 자라나고 있는 이 학교의 학생은 우선 품행이 단정한 것이 그특색인데 교회에서 경영하는 학교라 의례히 그럴 것이 아니냐고 쉽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오직 강직하며 빈틈없는 교장선생의 감독 아래 40여명 선생님들의 각별한 지도와 특히 이 학교 지도신부로 계시는 <바오로> 최(崔奭浩) 신부님의 철저한 종교교육에 기인된 것이라 하겠다.
자주정신(自主精神)을 기르는 것을 특히 교학의 중점으로 삼는 이 학교의 자랑거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번 전국 고등학교 실력(實力)경연대회에서 제2위를 차지하였는데 『동성』의 이름이 그 실력에 비하여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오히려 학부형들의 인식 부족에서가 아닐까?
또 웅변대회가 각 처에서 있을 때마다 그 1위는 언제나 『동성』이 차지하였다 하며
교장음으로 기초를 하여
날마다 가다듬어 덕을 닦으며
남보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
저마다 자랄만한 힘을 기르세
우리는 크게 쓰는 일꾼이 되어
거룩한 빛을 내는 동성(東星)학교
한국 가톨릭교회의 중등교육기관으로서는 첫아들격이 되는 이 동성중고등학교는 서울 안에서도 몇째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혜화동(惠化洞) 로타리 옆에 있는 이 학교는 혜화동성당을 묵쪽 옆에 두고 동편 언덕위에는 대신학교를 뒷마당에는 소신학교와 문 하나 사이로 통하고 있다.
1907년 즉 구한말(舊韓末) 이나라 신문화의 선봉이 되고자 『소의(昭義)학교』라는 이름으로 봉래동(逢來洞)에서 그 설립을 본 후 어언 50여 성상(星霜)은 물론 당초에는 초등교육기관이었으나 1920년 『소의상업학교』로 3년제 중등교육기관으로 승격하였고 얼마후 『남대문상업학교』라고 교명은 변경 5년제가 되었다가 지금의 혜화동 자리로 옮기면서 비로소 『동성』이라는 이름을 붙혀 『동성상업학교』라 칭하게 되었다가 현재 이름으로 된 것이다.
역대 교장으로는 초대 (소의학교 시절) 민강(閔疆)씨 남대문학교 시절엔 방규환(方奎煥)씨 그리고 박준호(朴準鎬)씨가 교장으로 있을 때에 혜화동으로 옮겨 동성상업이라 개명하고 그 후임이 현 부통령 장면(張勉) 박사 그 다음이 현 교장 전창기(全昌基) 선생이다.
참되고(誠實) 부지런하고(勤勉) 책임을 다하는(信義) 사람을 길러낸다는 훈육의 방침아래 중학교 12학급 고등학교 9학금에 중학교 803명 고등학교 575명의 장래 이 나라일군들이 자라나고 있는 이 학교의 학생은 우선 품행이 단정한 것이 그특색인데 교회에서 경영하는 학교라 의례히 그럴것이 아니냐고 쉽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오직 강직하며 빈틈없는 교장선생의 감독 아래 40여명 선샌님들의 각별한 지도와 특히 이 학교 지도신부로 계시는 <바오로> 최(崔奭浩) 신부님의 철저한 종교교육에 기인된 것이라 하겠다.
자주정신(自主精神)을 기르는 것을 특히 교학의 중점으로 삼는 이 학교의 자랑거리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번 전국 고등학교 실력(實力)경연대회에서 제2위를 차지하였는데 『동성』의 이름이 그 실력에 비하여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오히려 학부형들의 인식 부족에서가 아닐까?
또 웅변대회가 각 처에서 있을 때마다 그 1위는 언제나 『동성』이 차지하였다 하며 교장실에 장식되어 있는 많은 상장(賞狀)들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며 우승기(優勝旗)와 우승컵(盃)들은 또한 운동경기에도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과학(科學) 시설이 전국에서도 제일이며 그 중에도 생물학(生物學)에 관한 것은 국제적으로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인데 외국에서 교육 사절단이 와서 시찰할 때마다 과학부문에 대해 언제나 칭찬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설계(設計)는 5개년 계획으로 뒷마당에 5층으로 현대식 교사를 신축할 예정인데 금년에 그 첫 스타트를 할 것이라고. 이 학교 학생은 모다 품행이 단정하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것은 재학중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이 학교로서 큰 자랑거리는 이 학교의 졸업생으로서 이제까지 한 사람도 사회적인 전과자(前科者)는 물론 물의를 일으킨 자도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확실히 천주님의 가호가 언제나 이 학교에 있으시다는 증좌가 아닐까.
교회학교로서의 고충은 무엇이냐고 묻자 - 『천주교회에서 경영하는 학교인데 왜 내 자식을 넣어주지 않소』하고 찾아오는 교우들이라 한다. - 『물론 공부만 잘하면 그야 교우집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넣어주겠지만 공부도 못하는 아이를…』만일 그 아이가 공부를 썩 잘한다면 그 교우되시는 부형들은 틀림없이 그 학생을 경기(京機)나 그밖의 소위 일류교에 넣었을 것이리라 - 그런데 하필이면 공부 못하는 학생만을 교회학교에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그렇게 된다면 교회학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성』이 과연 오늘날과 같은 우수한 성적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인가? 교우 부형님네의 많은 이해가 있으시기를
오래고 영예로운 역사를 이어
조국의 융성함을 믿고 믿으며
선열의뒤를 따라 싸우고 나가
승리의 기념탑을 높이 세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