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고(前稿)에서 복음화의 방법론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고 하였다. 가장 보수적인 견해에 의하면 현세는 찰나에 불과하고 현세적 성공과 발전은 일시적이요 상대적인 것이니 교회는 인간의 구령에만 관심을 기울여서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어 교인의 수를 늘리고 교회를 팽창시키는 것이 교회의 고유한 임무라 한다.
이러한 견해는 그 근본에 마귀 세속 육신은 영혼의 삼구라는 사상이 깔려있어서 현세를 천시하거나 현실을 도피하는 경향으로 흐른다. 이들은 『내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다』(요한 18장 36)라는 성경말씀에 가장 철저하다고 자부하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교회가 세상일에 관여해서 신통한 효과를 낸 적이 없고 자칫하면 세속과 함께 타락하거나 세상의 박해를 자초하였기 때문에 세상사에서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복음화의 일환으로 교회가 사회에 참여한다는 일에 대하여 극히 회의적이거나 소극적이며 영세자가 많이 생기고 교회가 경영하는 사업이 잘되고있는 한 사회에 부정과 불의가 성하거나 말거나 인간의 정당한 권리가 정신적 물질적 사회적 폭거에 의하여 유린되거나 말거나 교회로서는 탄식하고 동정할 따름이지 이런 현상을 고발하고 개혁하는 투쟁을 버리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위험하고 해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자는 모름지기 기도와 희생과 착한표양으로 전교하고 성직자는 설교와 성사집행에 전념하고 수도자는 덕다운 생활을 영위하며 모든 이는 합심하여 예비자와 개종자와 냉담자의 수에 관심을 집중하고 공소와 본당과 교구의 수를 늘리는데 모든 정력을 쏟는것이 바로 복음화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는 이와는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 둘째 부류의 사고방식은 이러하다. 현대세계는 점점 기술혁명과 세속화로 말미암아 종교의 지배분야는 줄어들고 있으므로 어떤 지방에 교회를 부식한다는 일은 어려울뿐 아니라 불필요하다고 본다. 현대의 복음화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오늘의 인간들의 염원이 정치적 독립과 경제발전 사회향상 세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원 또는 선도하면서 그 민족 고유의 전통적 종교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을 보면 오늘 세계의 절대 다수의 인간들의 생활조건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극소수의 인간들이 풍요하고 자유스럽고 남아돌아가는 생활을 즐기고 다른 이는 기아와 질병과 무지와 공포에 눌려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 아닐 것이니 이 현실을 광정하여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좋다』(창세기 1장)고 보신 본래의 모습을 찾게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화라고 생각한다. 그들에 의하면 외교지방에 신생교회를 부식하는 것을 선교의 목표로 하는것은 농목사회(農牧社會)에서나 가능했던 방법이고 또 포교사(布敎史)에서 보듯이 서양 선교사들이 포교지방에 서양식 구조와 형태를 가진 교회를 부식하고 육성하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여 수백년후에도 교회가 토착화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외국의 인력과 재력에 매달려있는 형편이며 이런 제도적 교회를 부식하는 사업은 후진지역의 백성들에게는 정신적 식민주의라는 오해를 사고 탈그리스도교적인 서구에서는 많은 이가 하느님이나 그리스도는 인정하면서 교회는 배척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설교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것보다도 사회개발이 더 중요하고 항구적인 복음화임을 강조했다.
전이자(前二者)의 주장들을 양극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좀 더 온건하고 절충적인 복음화 방법을 주장한다. 이들은 복음화의 국극적인 목표는 구령에 있지만 인간이 기본생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복음화의 방법으로 인간 개발 사회 발전을 도와야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흔히 복음선포는 직접 선교요 사회개발은 간접 선교 또는 예비 선교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런 견해는 일리가 있는 것이고 또 근세 교회사 안에서 건설적이요 효과적인 선교방법론으로 인정되어온 것이다. 사실 이러한 포교지방에서 교육 의료 자선 개발 사업을 벌여서 사회발전에도 이바지하고 많은 영세자를 내기도 한다. 특히 후진국 백성들은 교회의 이런 사업의 혜택을 받은것이 계기가 되어서 교회와 접촉하고 세례까지 받는 경우가 허다함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공식태도나 선진적인 신학자나 선교사들은 이것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니 다음에 고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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