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살고있다는 자체는 언제든지 죽을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결국 끝에 가서는 죽어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천당에나 지옥에로 가야만 된다. 인간에 있어 이 시간은 아무도 피하지 못하고 당하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는 시간이다. 인간에 있어 가장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요 가장 불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의 시간이다. 아무도 예기치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죽음이다. 그토록 애써 살려해도 아무리 영양이 좋고 건강이 좋다 하더라도 죽음은 시간문제지 그 어떤 사람한테서 제외될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유명한 장군은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에서는 아무도 이길수 없다」라고. 실로 죽음은 미지수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장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써는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종국(終局)을 믿고 영원한 삶을 믿는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슨 큰 뜻을 주는것일까?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육신을 지탱해 오고 형성해오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을 말하고 일종의 존재의 파괴다. 마치 유리그릇이 깨짐으로 그릇이 못되듯이 형체가 파괴됨으로 본래에 가졌던 존재가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고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불사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생전에 했던 행실대로 상이나 혹은 벌을받고 그 상태에서 영원히 계속한다. 신앙인으로서 죽음은 존재의 파멸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서의 삶이다. 인간이 행동하는 것은 영과 육이 결합되어 있을때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영과 육이 분리된 죽음의 상태에서는 행동이 없다.
따라서 인간이 생활을 하고 악행을 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즉 영과 육이 결합된 상태에서만 있을수 있다. 따라서 살고있는 기간을 자유기간 혹은 시험기간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육신을 떠난 영혼은 다시 공을 세울 기회도 없어진다.
<무릇 네 손으로 행할 일에 힘을 다하여라. 네가 장차 음부에 들어가리니 거기에는 일도 없고 계교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전도서 9ㆍ10><만일 나무가 남편으로나 북편으로 쓰러졌으면 어디로 쓰러졌든지 그대로 있으리라 전도서 11ㆍ3><죽을때까지 의덕닦기를 두려워 말라 천주의 상금은 영원히 남아있느니라 집회서 18ㆍ22><밤이 오며 그때는 아무도 능히 일하지 못하느니라 요한 9ㆍ4>그러므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사람으로서 의식적인 행동을 할수있다는 것이다. 성서에 영혼의 죽음이란 말이 있으나 그것은 은총의 지위를 죄때문에 잃는단 말이지 영혼의 존재가 소멸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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