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유다스가 누구냐고 물으면 교회사를 눈여겨 본 사람이면 이선이(바오로)를 꼽는다. 병인교난때 순교한 베르네(장주교)의 하인이었던 이선이는 교회를 배반, 장주교와 숨어있던 불란서인 신부 그리고 유력 교우들을 밀고한 후 자신이 앞장서 포졸들에게 넘겼다.
얼마후 세상은 바뀌어 신부들이 활보하게 되었다. 이선이의 배교는 두고두고 신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 어머니는 훗날 신부가 된 아들을 무릎위에 앉히고 배교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이선이의 예를 들며 들려주기도 했다.
전날의 죄를 뉘우친 이선이는 지금 명동 대성당앞 계단에 꿇어 앉아 오가는 신자들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제 죄를 용서하시고 인자하신 천주께서 이 극악무도한 대죄인을 용서해 주시라고 기구해주십시오』하면서, 이선이는 배교자로 교회법상 자동적으로 파문된 신자였기 때문에 다시 교회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주교의 사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3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렇게 잘못을 뉘우친 덕에 사함을 받고 주교관 구내에 있던 성소활판소에서 일보며 속죄의 여생을 보냈다. 교회법상의 파문을 전국 가톨릭은 옛부터 기절벌(棄絶罰)이라 불러왔다.
죽은 가지를 잘라내듯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해버리는 최고의 벌인 것이다. 이 벌은 그 사유에 따라 교황이 내리고 사할수 있는 것이 있고 주교가 사할수 있는 것이있다. 배교와 같은 명백한 사유는 자동적으로 파문인데 이선이와 같은 경우다.
기절벌을 받으면 성사는 물론 성당안에 들어와 예전(禮典)에 참여할수도없다. 벌치고는 무서운 벌이다.
교회의 허락없이 외인에게 딸을 출가시켰다가 기절벌을 각오해야 했다. 1892년 가을 어느날 밤 서울 근방의 한 성당에 도둑이 들어왔다. 도둑은 감실안 성작과 촛대 등을 훔쳐나오다 붙들렸다. 원래 이곳은 오랜 교우촌으로 신교 자유 이후 약간 기를 펴고 텃세를 부리는 마을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동리를 돌아 신자들이 몰려나왔다. 도둑이 훔쳐내온 물건을보니 감히 만지기도 어려운 제기(祭器)가 아닌가. 분노가 상투끝까지 오른 신자들 이런 무도한 놈은 그냥 둘수 없다고 흥분한 끝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도둑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그어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엄청난 결과임에도 서양 주교의 주선으로 큰 소동없이 수습을 보았다. 주교는 벌로 이 지방에 대해 기절벌을 내렸다. 따라서 이 본당에서는 누구든 성무를 집행할수 없게된 것이다. 성무를 집행할수 없는 본당 신부는 딴곳으로 나가 본당을 개척했다. 이런 사실은 사실 전파를 꺼린 나이든 신자들이 입을 다문채 세상을 떠나 기록에 없이 구전으로 조금씩 전해왔다. 이 경우는 개인의 경우와는 달리 단체벌인 셈이다.
기절벌을 무식한 신자들은 당장 하느님의 날벼락이라도 내려 기절시키는 체형으로 잘못 알아듣고 못된짓 하는 자식놈 보고 「기절벌을 받을놈」이라고 욕을하는 웃지못할 광경도 있었다. 그런데 이 기절벌은 신자들이 준법정신이 높아서인지 두려워서였는지 모르지만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 벌은 공개로 알려지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보면 그저 어느 본당 누구 정도로 기억에서 사라지고 기록도 없다. 대신 성사막는 얘기는 추하게 전해온다. 지금 듣고보면 별 대수롭지도 않았던 이유로 또는 교회법상의 뚜렷한 근거없이 본당 신부들은 전가의 보도(宝刀)처럼 견책이나 징계의 의미로 성사를 중지시킨 예가 없지도 않았다. 애들 교리공부 열심히 시키지 않았다고 술먹고 행패부렸다고 노름했다고 난봉피웠다고 또는 개신교학교에 아들놈 보냈다고 호랑이같은 신부가 당분간 성사중지를 명하면 신자로서 그처럼 창피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도덕적 견책의 의미가 강하지만 신자로선 절대 순명의 부담큰 벌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신부가 다음해 공소순회때까지 성사를 막으면 그 한 해 동안 열심히 노력해 다음공소때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얘기지만 해방후 혼란기에 순진한 신자청년중엔 공산당에 가담한사람이 더러 있었다. 이를안 본당 신부들은 어떻게해서든 타이르고 깨우쳐 손을 떼게한 일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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