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떽스는 직업이란 마술이 인간에게 한 세계를 열어준다고 본다. 직업ㆍ일 즉 행동이란 연장 너머로 또한 그것을 거쳐서 인간은 본래의 자연을, 시인의 세계를, 인간의 신비를 찾아낸다고 그는 믿는다. 집무중인 조종사가 어디까지나 엄격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나침반의 지시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만큼 법규정의 제재하에 절대 복종해야함으로 개인의 「이니시아티브」 조금도 발휘못한다.
이 사실 자체만을 보아서는 이 파이릇트는 수인(囚人)중의 수인(囚人)이라하겠다. 그러나 그는 현창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를 재독하고 이 지구의 겉얼굴 뿐만아니라 그 밑바닥의 암층지심(地心)까지 발견하고 폐허의 구렁속에도 이끼처럼 생명이 만발하는 신비를 통하여 인간에게 부여한 생명의 힘과 상쟁의 비밀을 깨닫는다. 이렇게 인간은 행동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고 또한 자꾸 체험해감으로써 점점 커가는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마치 밭을 갈며 사색하는 농부는 어떤 철학가나 과학자 못지않게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캐어내듯이 『사람은 직업이란 연장을 통하여 서로 연대책임으로 얽혀있다는것, 따라서 각자가 자기가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은 인류의 존재의의를 살리는 것이 되고 그 공동체 건설에 직접 이바지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인간 부조리를 푸는 열쇠는 먼저 인간이 자기가 만들어낸 우상으로 부터 해방되어 「하나의 양심」을 발견하는데 있다는것. 인간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치있는 일을 하려면 자기의 좋은것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기극복이나 속박은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인 것이고 이런 극복이나 속박은 자기해방을 위한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도리같으나 엄연한 진리가 아닐수 없다. 따라서 생떽스의 최고 교훈의 심볼은 「사막과 우물」이다. 인간대지를 상징하는 메마른 이 사막, 그러나 그 어느곳엔가는 필연코 우물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사하라」를 가까이 하는 것은 결코 오아시스를 찾아가보는게 아니라 샘물을 가지고 종교를 삼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대하여 배우는 것은 사귄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죽을 인생에 불과한 내 안에 꿈이 가득차 있듯이 꿈이 샘물처럼 소리없이 내안에 아늑히 스며들 듯이… 생떽스가 말하는 우물이란 인간애 새 관계 창조, 상호교류 및 상보(相補)의 가치인식에서 오는 내심(內心)의 풍요를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참된 왕국은 내심에 있음으로 이 풍요는 아무도 빼앗아 갈수없는 자기보화(自己寶貨)인 것이다. 그래서 생떽스의 이상향은 그 자체가 우정과 상호존경 위에 건립된다. 우물도 사랑과 같이 멀리 뻗칠수 있듯이 우정도 목소리나 영상이 없어도 그 실재를 극히 우리 가까이 느낄수 있는것이 아닌가.
여기서 잠깐 샘물로 종교를 삼는 「사막의 조난자」의 「물의찬가」를 들어보자 『물! 너는 맛도 없고 빛깔도 향기도 없다. 너는 정의할수가 없다. 너는 알지 못하는채 맛보는 물건이다. 너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다. 너는 관능(官能)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쾌락을 우리속깊이 사무치게 한다.
너와 더불어 우리안에는 우리가 단념하였던 모든 권리가 다시 들어온다. 네 은혜로 우리안에는 말라붙었던 마음의 모든 샘물이 다시 솟아난다.
너는 세상에 있는것중에 가장 큰 재물이다. 땅속에서 그렇게까지 순결한 너는 가장 섬세한 것이기도하다. 사람은 「마그네슘」이 섞인 샘위에서 죽을수있다. 짠물 호수물 지척에 두고 죽을수도 있다. 약간의 염분을 지닌 이 술을 마시고 죽을수도 있다. 이처럼 너는 도무지 혼합을 허용하지않고 변질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우리들안에 무한히 단순한 행복을 부어준다』(인간의 대지에서)
생떽스의 샘물은 바로 금(金)이요. 별일 뿐만아니라 그것이 바로 꿈이요. 우정이다. 그가 말하는 우정이란 희귀한 보물이다. 왜냐하면 참된 친우란 당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얽힌 그 많은 추억, 함께겪은 그 많은 괴로운 시간, 그많은 불화와 타협 그리고 마음의 열정이라는 보물보다도 더 값진 그무엇이기 때문이다. 새벽녘 생생한 색채로 단장된 저나무와 꽃들과 소녀들의 저맑은 웃음소리가 주는 아름다움은 돈으로 못사듯이 참친구의 우정은 돈으로 살순없다. 이런 우정을 쉬이 얻을줄 믿는 자는 나무를 심은지 얼마 안되는데 그 그늘밑에서 쉬기를 바라는 자라고나 할까. 과연 친구들은 위기에 서로 돕는다. 기쁜일에는 석방된 죄수들같이 함빡 웃음속에 서로 옹호한다.
정말 얼마나 협소하고 누추하게 보이는 곳에서도 증오 우정 인간 희생이란 거대한 연극이 실연(實演)되고 있는가? 실로 인간다운 자세에서 감당하는 모험적 활동과 우정은 시련을 같이 겪음으로 해서 영원히 맺어진 인간과 인간이 전체이익을 위해 만난을 무릅쓰고 정복해가는 힘이다. 그러나 사색없는 행동만의 행동만으로서는 인간을 위대한 본처지에까지 키우지 못한다. 현실사(現實事)는 명상을 통하여 때로는 웅대하게 때르는 드라마틱하게 다듬어져가고 또한 고상하고도 열기띈 주역을 달기도 하고 이 세상에 대하여 또 자기자신에게 대한 특수 비젼을 펴낼수도 있기때문이다. 인간은 동적인 것에서 보다는 정적 고독속에서 신비를 더 깨닫는다. 생명과 생명이 그렇게 잘 합쳐지고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꽃들이 서로 섞이고 백조가 다른 모든 백조들을 아는 이 세상에서 사람만이 홀로 고독의 참뜻과 그 가치를 알뿐이다. 이렇게 고독의 출구를 투쟁과 모험안에서 연대책임에서 우정에서 찾고 그 증거를 봉사안에서 추구하는 사상은 A Malraux와 상봉한다.
생떽스같이 「부단히 사색하는 행동가」는 어떤 풍경을 대할때 단순히 대하진 않는다 땅, 하늘, 저 별들, 바다위를 지나가는 바람자욱, 황혼의 저 금빛구름들, 이런것들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연장삼아 더욱 순수한 인간 처지에로 승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완전히 길들여져서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자아의 행동과 사색이 즉 영과 육이 혼연일체가 되어 「오직 유익한 하나」만을 위해 고스란히 기여하게 되기까지 완전해질것이다. 생떽스가 말하는 「완전」이란 『아무것도 덧붙일것이 없을 경지가 아니라 이제 아무것도 더 떼어낼 것이 없을 경지가 아니라 이제 아무것도 더 떼어낼 것이 없을 경지를 말한다. 마치 최고도로 발달한 기계란 우리 눈앞에서 그 기체(機體)가 숨어버리고 오직 그가 공헌하는 결과만을 우리가 입을수있듯이…이 경지야말로 「떼이야르드 샤르댕」이 논한 「오메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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