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데레사學校(학교)
合心一致(합심일치)의 융화 가운데 겸손·순박·사랑의 小花들
영적 꽃송이와 인정어린 새 교사
발행일1960-02-21 [제217호, 4면]
바다는 50도에 물결 재우고 하늘은 바다보다 더 맑고 푸른데 여기 구봉산줄기 불숙 내민 기슭에 5층의 경쾌한 백악건물이 서서 백만 시민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
그 이름 <데레사>여자중고등학교.
영해 예수의 소화(小花) <데레사>를 주보(主保)로 하는 이 학원은 겸손과 순박과 사랑을 표방으로 여성교육을 영위하는 천주교 부산교구 산하의 손꼽는 학원이요 항도(港都) 부산에서의 공사립학원간에 그의 성예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54년 4월 20일 그 당시 <요셉> 정(鄭在右) 신부에 의하여 부산진본당 앞에 구릉(丘陵) 지대에 세워진 바락크교사의 문을 연 것을 효시로 그해 9월 1일 중학 9학급 고등 8학급의 정식인가를 받았으며 4년후인 58년 3월 14일 다시 야간부(夜間部) 중학 3학급 고등 3학급의 증설인가를 받아 영세소시민의 여성교육에 기여한바 컸음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늘에 우아한 여학원이 이 자리에 이렇게 세워지기까지의 7년간의 세월은 그다지 오랜 것은 아니나 그러나 데레사학원의 밟아온 역정은 참으로 기구하였고 허다한 애로의 연속이었다. 생각만해도 지겨운 일이지만 1.4 후퇴후 피난수도(首都) 당시의 각급 학원이 학적부만을 걸머지고 와서 부산은 확실히 학원전시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서울 수도여자중교고가 현재의 데레사학원의 부지를 빌려 바다속 바위들에 붙은 굴깍지처럼 무질서하게 판자집을 더덕 더덕 부쳐 짓고 수업을 계속하다가 환도와 더불어 올라간 후 부산 출신의 학생들이 갈팡질팡할 무렵에 평소에 뜻한 바 있던 초대교장 정 신부는 위와같은 절차에서 개학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다지 순조롭지만은 않다. 항차 거창한 포부와 이상을 그리는 정 신부의 계획이 차디찬 현실 앞에서 일진질퇴 참으로 성사될듯 하다가는 좌절되고 꼭 결실될듯 될듯하면서도 헛탕을 치기를 수없이 되풀이 한 것이다. 학금수는 늘어 혼잡을 이루는 가운데 수정동(水晶洞) 구봉동산을 3층계로 정지(整地)하면서 할 수 없이 임시교사를 지어 수업이 계속되었으나 심한 비탈길과 무질서하게 지어진 판자집으로 인하여 학생통학에 커다란 불편을 주어 다같이 부심하던중 부산교구의 설정과 함께 <요왕> 최(崔再善) 주교의 영단으로 옛터를 환원키로 결단이 내려져 59년 4월에 기공하여 5천여만환의 총공사비로써 5층 22개 교실을 반년만에 준공하여 9월 26일 신축교사로 감격적인 이전을 한 것이다.
초창기의 동학원에 제2대 교장으로 부임된 <요셉> 김(金在石) 신부는 사제가 부족되는 교구의 사정으로 인하여 울산(蔚山)본당을 담임하고 있는 관계로 1주 1차 정도로 주요사항을 결재하기 위해 등교하는 형편으로서 대소사를 교감 <엘리사벳> 수녀가 대결(代決)하는 실정에 노여져 있는 것이다.
『고생합니다』라는 위로인사에 교감수녀는 여자답지 않게 『고생이랄건 없지만 정말 고비를 넘기에는 고닮었읍니다.』라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섞인 술회와 함께 창밖 먼 하늘을 바라보며 고초많았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하다.
기자와는 구면인 교감수녀는 마치 동기간을 만나 인생사리를 말하드시 퍽도 은근하고 자상하다. 그중에 놓치지 못할 몇가지의 일은 『신설교구요 여유없는 교구 재정에서 이처럼 방대한 공사를 과감히 또한 신속히 관성한데는 최 주교의 절대한 임이었거니와 서울 「바오로』」수녀본원의 지대한 원조를 잊을 수 없다. 』는 것이다.
그러고 또 한가지는 『1년유반을 2백명의 가톨릭신자학생이 짝을 심지 뽑아 날마다 매괴신공 1단씩을 올렸고 지금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며 1천여명의 학생이 우리학교를 짓는다는 한마음 한뜻에서 그 수많은 벽돌장을 이고 들고 하여 공사장으로 옮겨 날르는데 하루하루 진척되는 공사와 함께 학생들은 수고로움을 모르는 벌떼와 같았었고 그 왕성한 사기(士氣), 강잉한 인내력에는 진심으로 눈물겨운바 있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 공사는 영적인 꽃송이와 인정이 얽히고 섫긴 가운데 6개월의 짧은 시일로서 준공을 보았다는 것이다.
겨울날씨이건만 봄볕처럼 따뜻한 양광이 스며드는 여러교실을 둘러보는 동안에 교감수녀는 『이제 숙원의 본관은 이정도 이뤄졌으니 해동하면 교정을 정지(整地)해야겠다고 또 강당을 지어야 겠다.』는 드높은 건설의욕을 들려주는 한편 항도(港都)요 상공입지인 부산의 교육실정을 말하면서 특색있는 교육을 실천하겠다.』고 소신(所信)을 다짐하는 것이다.
역사 짧은 학원에서 남다른 자랑을 굳이 찾기보다는 보여지고 느껴진 것을 자랑하기에 인색할 수 없다. 그것은 교무실의 완전한 『합심일치』다. 혼신의 노력과 온 정열을 기우리는 4명의 수녀를 필두로 30명의 교직원이 원만한 융화 가운데서 직책에 정진하고 있음이다.
금년도의 입학전형은 전기(前期) 유시험제, 중420명(야 120명) 고등 180명(야 6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