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과르디니 敎授(교수) 그의 75세 수연에 부침
발행일1960-02-28 [제218호, 3면]
1960년 2월 17일은 「뮨헨」대학교수 <로마노 과드리니> 준주교의 75세 수연을 맞이하는 날이다. 모든 가톨릭신자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운동에 관하여는 모든 지성인(知性人)들이 이날을 감사와 존경으로 맞이함은 실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과르디니>의 고향은 「베로나」다. 「베로나 」는 문화의 분수령(分水嶺)이며 「로만」정신과 「게르만」정신이 상충하는 문화의 접선지(接線地)로 알려진 저 옛날의 「베른」이 아니냐. 여기의 정기를 타고 난 <과르디니>는 그 천품이 박력에 쌓여 일보우일보(一步又一步) 완성에 이르름에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스스로의 태(態)와 형(型)을갖추기에 항상 그 의지에 불을 닮고 정신과 마음의 불안은 그에게 잠시도 휴식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그의 저서(著書)를 읽고 그의 연설을 듣는다면 흡사 이도 모든 역사의 흘러옴이 남에서와 북에서 유전(流轉)하여 「베로나」에서 합류하여 서로 융합하고 <과르디니>를 통하여 다시 흘러나오지나 않나 하는 인상을 누구나 받으리라. 정신적, 영적 영익에 있어서 그 은밀한 분위기마저 놓치지 않는 그의 감수성(感受性) 시기에 적응한 발언을 섯슴치 않고 하는 그의 용기 현대인의 고민과 불안에 귀를 기울여 무학한 사람, 보잘것 없는 사소한 이에도 다 응하는 그의 명투(明透)한 청력(聽力), 진정(眞正)과 무류(無謬)에 대한 그의 수호(守護), 공허함과 감정적인 처사와 부정에 대하여는 육체적 고통과 분노를 초래할 만큼 민감한 그의 성품, 이렇게 그의 천품을 살펴 봐도 도달할 수 없는 그의 고매한 인격은 그대로 신비롭게 남아 있을 따름이라. 이러한 근본적인 성품이 <과르디니>로 하여금 청년지도에 전례운동에 확실 순수한 기반을 가진 문화수립을 위하여 열중하고 매진하게 했던 것이다.
「본」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브레쓸라오」대학에서 대학교수 자격을 획득할때까지의 긴 세월은 1923년부터 1939년까지 계속되었으며 「백림」대학시는 탄압을 받아 강의금지를 당하고 1945년에서 동47년까지 2년간 「튜빈겐」대학의 교수생활을 거쳐 1947년 「뮨헨」대학 철학부 교수로 초빙을 받았을 때까지 항상 그 임무를 충실히 완수한바 있고 대학대성당을 맡아본 여러해 동안 강론신부로서 특히 「뮨헨」대학 성당 강론신부시절에는 각양각색인 문화인들의 청강자가 성당을 입추의 여지없이 채웠으며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저서와 논문들을 발간한 이 모든 일과 긴 세월은 현대인들에게 그 자신을 이해시키는데 일관했던 것이니 그를 현대인들은 체면과 허식에서 해방되고 그의 온화한 시선에 접하므로도 족히 그의 정신과 문화영익에 스스로를 투입케 했던 것이다. 거기에 <과르디니>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라.
<과르디니>의 철저한 해석법은 탁월하여 인간의 긴 행로에 나타나는 모든 양상을 역사와 현애에서 문학과 철학에서 종교적 신앙과 세계와의 관련에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의 대범한 테두리 안에서 키를 잡아주는 역활을 한다. <소크라테쓰>, <아우구쓰디누쓰>, <보나벤투라>, <단테>, <빠스깔>, <헬들린>, <릴케>, <도스토예프쓰키>들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여 그들은 <과르디니>의 이야기의 상대가 되며 하나의 옛날 역사로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 실존을 양육하는 의미에서 진실과 근본을 지침해 주는 것이다. <과르디니>는 자유, 은총, 권위, 참됨, 권리, 선과, 진리 이러한 인간의 문제를 전정 참되게 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그 중심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그 구체적인 실현을 보는 생활한 신앙에서 파악되고 있다.
그리스도에로 가는 길을 타개하고 그의 인간과 사입의 뜻을 밝히고 교회를 그 본질과 사명에 의하여 해석하는 것이 <과르디니>의 평생 소원이었다. 이 관점에서 엮어진 그의 무수한 저서들은 지금 세계 방방곡곡 인류를 윤택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로마노 과르디니>는 우리가 그속에 살고있는 정신적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조각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참되고 변함없는 가리츷 준 상증이다. 여생을 더욱 더 결실많고 창작에 빛나는 한해 한해로 그에게 기리 베푸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