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博文女子中·高校
깊은 바다 진주와 같이 바람·물결 이겨나갈 아가씨들
무용으로 명성이 자자
발행일1960-02-28 [제218호, 4면]
동인천(東仁川)역에서 하차하자면 합승택시들의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 『박문여고 앞 가-』하는 외침도 섞여있다.
우선 그 목소리를 따라 편승하고 약 10분 운전수는 바로 『박문여자중·고등학교 입구』라는 푯말이 서 있는 앞에 차를 대주었다.
인천시내에서 나와있어 약간 교외에 속하는 이곳도 이제는 많은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으며 이 학교도 새로 신축하는 3층 건물이 앞날의 대박문(大博文)을 과시하는듯 눈부신 건물이 우뚝우뚝 올라가고 있다.
일요일도 아닌데 교내는 죽은듯이 고요하다. 이날이 바로 이 학교 제3회 무용발표일이었다. 과연 여자들의 학교라서 깨끗하기 그지없는 교사내외는 정말 그대로 발을 딛여놓기가 송구스럴정도였다.
『가톨릭시보사에서 왔읍니다.』하고 인사하며 들어겄더니 마침 당직으로 계시던 수녀님(메리놀회) 한 분이 맞아주신다.
이 학교는 1940년 4월 27일에 『소화(昭和)』고등여학교라는 교명으로 인가를 받아(日政때) 그해 5월 18일에 인천 『송림』국민학교 교사의 일부를 빌려 수업을 시작한 것이 개교(開校)로서 그후 1941년 11월에 부평에 세운 새 교사로 이전을 하였으나 군용(軍用)으로 교사가 징발되었다가 8·15의 조국해방과 더불어 이 학교가 천주교회 서울교구의 관리 아래 들어오게 되어 노(盧基南) 주교께서 그 설립자가 되고 교장으로는 현성신대학학장 <베드루> 한(韓공烈) 신부께서 부임하였다.
그러나 부평에 있던 교사는 미군들이 사용하다가 그만 화재를 일으켜 전소되었고 그후 후관(後관인천(東仁川)역에서 하차하자면 합승택시들의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 『박문여고 앞 가-』하는 외침도 섞여있다.
우선 그 목소리를 따라 편승하고 약 10분 운전수는 바로 『박문여자중·고등학교 입구』라는 푯말이 서 있는 앞에 차를 대주었다.
인천시내에서 나와있어 약간 교외에 속하는 이곳도 이제는 많은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으며 이 학교도 새로 신축하는 3층 건물이 앞날의 대박문(大博文)을 과시하는듯 눈부신 건물이 우뚝우뚝 올라가고 있다.
일요일도 아닌데 교내는 죽은듯이 고요하다. 이날이 바로 이 학교 제3회 무용발표일이었다. 과연 여자들의 학교라서 깨끗하기 그지없는 교사내외는 정말 그대로 발을 딛여놓기가 송구스럴정도였다.
『가톨릭시보사에서 왔읍니다.』하고 인사하며 들어겄더니 마침 당직으로 계시던 수녀님(메리놀회) 한 분이 맞아주신다.
이 학교는 1940년 4월 27일에 『소화(昭和)』고등여학교라는 교명으로 인가를 받아(日政때) 그해 5월 18일에 인천 『송림』국민학교 교사의 일부를 빌려 수업을 시작한 것이 개교(開校)로서 그후 1941년 11월에 부평에 세운 새 교사로 이전을 하였으나 군용(軍用)으로 교사가 징발되었다가 8·15의 조국해방과 더불어 이 학교가 천주교회 서울교구의 관리 아래 들어오게 되어 노(盧基南) 주교께서 그 설립자가 되고 교장으로는 현성신대학학장 <베드루> 한(韓공烈) 신부께서 부임하였다.
그러나 부평에 있던 교사는 미군들이 사용하다가 그만 화재를 일으켜 전소되었고 그후 후관(後舘)을 가지고 공부하다가 민족의 수난 6·25와 더불어 피난.
이렇게 파란곡절을 많이 겪어가면서 부평교사를 경찰전문학교에 넘기고 현 소재지에 있던 북문유치원자리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인데 현재는 『메리놀회』에서 경영을 맡아 인천지구 감목대리 <요셉 기본스>(盧) 신부가 재단(財) 이사장이시다.
높은 뫼 헐고헐어 새터를 닦고
피와 땀 흘려세운 박문의 등대
찬란히 반짝이는 빛을 안고서
힘차게 참사람의 보람 이루세
『참(眞)되고 착(善)하고 아름(美)답게』라는 세가지 못토를 교육의 목표로 삼고있는 이 학교는 현재 중학1학년이 6학급, 2학년이 3학급, 3학년이 2학급이며 고등학교가 각 학년 1학급씩 도합 14개 학급의 아담한 학교이다.
이 학교의 자랑꺼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교장 김(金聖德) 수녀는 『이제 걷기 시작한 학교에 무슨 자랑이 있겠읍니까』고 겸손하신 말씀.
그러나 이 학교는 정숙한 모범학생들이 배출되어 사회에서 많은 칭찬을 받고 있으니
마음은 깊은 바다 진주와 같이
된바람 성낸 물결 이겨나가며
바르고 옳음만을 간직하여서
굳세게 착한사람 본을 보이세
하는 교가(校歌) 그대로를, 이 학교 졸업생들은 잘 실행하는 것 같다.
정신적 면을 중히 여긴다해서 결코 체육교육을 등한히 하지 않는 이 학교는 여성의 체육훈련으로서 무용을 크게 장려하고 있어 세 차례나 무용발표회를 가져 인천시내에서는 『박문』하면 무용이라고 할만치 유명하다는 것이며 탁구(卓球) 또한 어떤 경기대회에 출전(出戰)하던지 만만치 않은 존재라 한다.
교장수녀께 『앞으로의 계획을?』하고 물었더니 『말만 앞서 무얼합니까』하는 그 한마디는 공수표가 하도 많은 세상이기에 차라리 포부와 희망과 이상을 오직 묵묵히 실천해 나갈 따름이라는 굳은 결의의 표명이기도 하다.
풀섶에 옹기종기 백한 한떨기
찬이슬 담뿍이고 향기도 맑다
몸과 얼 아름답게 가다듬어서
드높이 떨치리라 박문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