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支社 發】 부산교구 감목 <요왕> 최(崔再善) 주교는 금년 사순절(四旬節)을 맞이하여 그의 사목(司牧) 아래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멧세지를 보내어 『인류의 죄를 대신 보속하신 구세주의 40일엄재를 본받아 극기(克己)와 보속(補贖)의 정신이 신자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비록 개과천선이 필요없는 의인(義人)이라 할지라도 구세주의 대신보속을 표양삼아 남을 대신하여 보속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요왕> 주교는 총인구 2천4백만에 비하여 40여만 불과한 한국가톨릭신자들은 많은 외교인들을 대신보속하는 뜻에서 봉재성시(封齋聖詩)를 호소하였다.
멧세지
『보라 지금은 성총을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코린토 후서 6,2)
지난 수요일 아침에 머리위에 재(灰)를 바는 예절로서 거룩한 봉재때를 맞이하였읍니다. 성총을 받을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인 봉재때를 거룩히 지냄으로서 제위 신부님들과 수도자들과 교우들에게 풍부한 성총과 참된 구원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봉재때는 본래 예수 부활 첨례를 준비하는 시기로서 예비자들을 가르치며 죄인들이 보속생활을 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설정한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보속하신 구세주의 40일 엄재(嚴齋)를 본닥아서 우리도 이 봉재 40일 동안에 우리 자신의 이왕 죄를 보속하고 아울러 전인류의 죄를 대신(代身) 보속하는 뜻으로 교회에서 명하는 대재(大齋)와 소재(小齋)를 충실히 지키며 열심한 기구(祈求)생활에 잠겨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읍니다.
구제수의 지상생활은 전부가 우리들을 교훈하실 목적을 내포하는 바이지만 무죄하신 천주 성자로서 극기와 보속의 일생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구속하시는 한편 우리들에게 극기보속의 정신을 박아주시기 위함이었읍니다. 특히 공생활(公生活) 시초의 40일 엄재는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아름다룬 표양이 아닐 수 없읍니다. 인류를 대신하여 굶주리시고 목마르시고 마침내 「골고타」의 십자가 위에서 육신생명까지 희생하신 그 위대하신 극기보속의 정신이 우리 신자 생활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니다.
구세주의 일생에서 극기보속을 빼놓는다면 구세주의 구세사명을 엿볼 길이 없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생활에서 극기보속의 정신을 뽑아버린다면 영혼없는 육신처럼 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극기보속의 정신을 완전히 체득한 영혼만이 명실공(名實共)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구세주께서 극기보속을 하신 것은 당신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죄로 죽은 우리들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누가 만일 나의 굶주림을 보고 자기자신이 굶주려 가면서까지 나를 먹여주고 내가 죽을 위험을 당했을 때 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의 목숨을 희생하겼다면 우리는 일생을 두고 한순간도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40일을 엄재하신 구세주 「골고타」의 제물(祭物)이 되신 예수님이 바로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생을 두고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유일한 길은 극기희생의 길입니다. 그러나 안락(安樂)만을 찾고 호의호식만을 바라는 수많은 인간들은 주님의 희생정신을 본받기를 두려워합니다. 자원희생(自願犧牲)이란 정신은 고사하고 자원보속이란 개념조차 모르는 영혼들이 허다하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후 목적인 천국영복으로 향한 길은 두갈래밖에 없으니 죄없이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범죄후에 회개(悔改)를 위한 보속생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전히 죄없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극소수의 성인성녀들에게만 가능한 것이고 인류의 대부분은 범죄후에 아직 열려있는 유일한 길인 회개 보속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극기보속이 아무리 괴롭고 싫다해도 이것이 죄인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인 것입니다. 각자 솔직하게 자신의 양심을 살펴보면 죄없다 할 자 그 누구입니까? 지난 생애의 장단을 막록하고 죄중에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범죄치 않으리라 장담(壯談)할 수 없을진대 우리의 생애는 계속적 보속의 생활이라야 할 것입니다. 특히 보속의 때며 회개의 시기인 봉재 40일을 거룩히 지냄으로써 개과천선해야 할 것입니다. 개과천선함이 필요치 않은 의인(義人)이라 할지라도 자신(自身)을 위한 보속외에 대신(代身) 보속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구세주의 극기보속이 온전히 남을 위한 대신보속이었으니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들의 보속도 남을 위한 대신보속의 성격을 내포해야 할 것입니다. 신비체(神秘體)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몫으로 극기회생 하셨으니 지체(枝體)인 우리들도 마땅히 지체의 몫으로 대신보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뜻으로 성 <바오로> 종도께서는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수난하심에 결함된 바를…… 내 몸으로써 보충하노라』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공로가 부족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무한하신 구세공로를 실지로 영혼들에게 분배하는 데에 교우들의 극기보속이 맡아야 할 몫이 있다는 오묘한 교훈인 것입니다.
대신보속의 필요성을 깊이 깨닫기 위하여 우리 주위(周圍)를 살펴보십시다. 남한(南韓)에 총인구가 2천4백만명인데 교우는 겨우 40만밖에 안됩니다. 60여명중에 한명의 교우가 섞여있는 셈입니다. 외교인들을 위하여 대신보속하는 뜻으로 매괴신공 한번씩을 드린다고 하면 각 교우가 60번을 바쳐야만 외교인 한사람을 위해서 한번씩 바치는 셈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대신보속 했다는 것은 참으로 미약하기 짝이 없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읍니다. 우리의 대신 보속이 충실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외교인들이 주의 품안으로 돌아오는 은혜를 받을 것이고 또 따라서 그리스도 왕국도 나날이 번영할 것이니 성직자들은 각기 맡은 양떼와 더불어 이 봉재 40일을 참된 극기보속의 때로 거룩히 지내 주시기를 바라마자 않는 바입니다. 마침내 극기희생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마땅히 자기를 끊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해야만 함께 영화롭게 되리라고 <바오로> 종도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극기 희생을 바치는 자만이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승천하는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