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大洋共業中高校(대양공업중고교)
기상은 높고 포부는 크게 슬기롭고 줄기찬 대양의 사나이
무선공학·통신공학 특색있는 실업교육
발행일1960-03-13 [제220호, 4면]
부산 시청앞에 제2송도(松都)로 가는 뻐스를 타고 약 10분 남항동(南港洞) 전차 종점에서 내리면 길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2층 「콩크리트」건물이 있다. 「대양(大洋)중·공업고등학교」라고 쓴 간판이 눈에 띄인다. 그리 크지 않은 운동자이지만 깨끗이 청소되 있었고 교무실로 들어가는 현관 앞엔 교정이 제법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기자는 교무실이라고 쓰여진 문을 두어번 녹크하였더니 『들어 오십시요』하는 답례다.
책상이 「ㄷ」자 형으로 놓여져 있었는데 5,6명의 직원이 열심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선생님께 다가서면서 인사를 하고보니 지난 12월 「마닐라」에서 열린 「빡스 로마나」 국제회의에 부산교구 대표로 참석한 장(張赫杓) 선생이었다. 장 선생은 기자를 교감 전(全忠孝) 선생께 안내한다. 『학생들 지도에 얼마나 수고 많으시겠읍니까』하는 기자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숨을 쉬며 피로에 지친 인상을 지우면서 하소연 할 사람이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원래 우리학교는 1946년 3월 15일 일정(日)시에 경방단(警防團)이 사용하던 본관(本館) 건물을 인수하여 부산공과(工科)학원이라는 명칭으로 개학하여 1954년 5월 10일 재단법인(財團法人) 「부산공과학원」 경영으로부터 「천주교 유지재단」 경영으로 경영자가 변경되어 교회학교로 되었읍니다.
지금은 고등부 2백명과 중학부 7백여명 도합 9백여명의 학생에 13개 「크라스」를 가지고 있으며 고등학교는 무선공학(無線工學)과 통신(通信)과로 나누어 다른 실업계 학교에 비하여 우수하며 특색있는 실력을 양성하고 있으나 현재 관(官) 기업체에서는 어디까지나 인정제(人定制)로서 인재(人材)를 채용하고 있어 실력은 있다하드라도 자격증(資格證) 유무관계로 사회진출에 곤난을 겪어왔지만 금년부터는 어떠한 수단으로라도 소정(所定)의 과정을 연수한 졸업생에게 상급자격증을 수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읍니다.』고 하면서 관계당국에서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고 희망에 찬 어조로 교감선생님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금년부터는 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진학반을 조직하여 다른 인문계(人文系) 학교와 같은 학과목을 가르쳐 진학에 지장이 없게 할 예정』이며 작년가지만 하드라도 이 학교 졸업생들은 체신국과 방송국들을 비롯한 군(軍) 계통에 많이 우선 채용되었는데 『앞으로는 더 능율적이고 실질적인 기술과 실력을 양성시켜 취업보도에 전심 전력을 다 하겠다』고.
장 선생을 따라 기자는 실습실로 안내되었다. 때마침 통신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나아가 많은 선생님이 반가히 맞으며 실습광경을 설명하여 주신다. 『아직 완전한 시설은 아니지만 실내 발전기(發電器)를 장치해 놓고 학생들용 「키」와 「레시바」가 한 사람에 하나씩 각각 설치되어 있어 직접 발신과 수신을 실습교육하고 있읍니다. 지금 서울에 『동국무선학교』가 있고 체신(遞信)학교에 무선과(無線科) 가 있긴하지만 우리학교의 시설과 교육에 뒤떨어질 것입니다. 무선공학에 무선전신과 무선전화도 시설하여 서울 공과대학(工大)을 비롯한 우리나라 각 공업계 학교와 전화로 교육과제를 연구 실습할 수 있도록 전화실도 완비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만 하드라도 4구(球) 정도의 라이도 60여개를 구성하여 시장에 상품화하여 대 호평을 받았읍니다.』라고
통신공업계에 40년간이나 종사했다는 이(李世源=58) 선생님은 체신부의 과장까지 역임한 분이며 능숙하고 숙련된 기술과 여러해 동안 통신공업에 종사하는 동안의 체험으로 능률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어 매년 우수한 일꾼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무실로 돌아오니 장선생님은 젊은 선생님 한분을 또 소개해 주었다. <아오스딩> 신(申海南) 선생님은 모범신앙가로서 학생들의 영신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분이며 교내 『조찰하실 모친』(고등부) 「레지오 마리에」 쁘레시디움 단장 겸 지도교사로 활약하고 있다. 신 선생의 말에 의하면 불원간 중학생부에서도 「쁘레시디움」을 설립할 것이라고.
언제나 어디서나 『덕망(德望) 있고 진실하고 충직(忠直)한 사람이 되자』 하는 것을 이 학교의 교훈(校訓)으로 내세워 인격도야를 더욱 중요시하는 교장 <비리버> 김(金基泰) 신부님은 때마침 바쁘신 용무로 계시지 않아 뵈옵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풍부한 지성미가 풍기는 선생님들의 모습과 그렇게 이름나게 알려진 학교는 아니었으나 이처럼 험악한 사회에 우리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취직전선에 유일한 전당이라기보다 유효적절한 학교가 우리교회 산하에 있었다는 것은 포근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절영산(絶影山) 기슭에 높이 솟은 우리집
태평양 한바다를 굽어 보는 듯
기상은 높고 포부는 크게
장엄한 푸른 물에 마음 기르세
슬기롭고 줄기찬 우리의 대양(大洋) 기리 기리 빛나라
우리의 모교(母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