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추기경으로서의 선배인 「인도」의 <그레이시어스> 추기경은 특히 「아프리카」와 「필립핀」 및 「일본」의 첫 추기경들에 관하여 「엑싸마이너」 주관에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금번의 7위의 새 추기경 중에 「일본」 「아프리카」 「필립핀」의 첫 추기경의 임명을 「인도」에서 특별히 기뻐한다.
日本人
「일본」인 <도이> 대주교는 1892년 12월 22일에 탄생, 1938년에 신품을 받았다. 1955년에 내가 「미국」으로부터 「도오꾜」를 거쳐서 귀국하는 여행 중 교황대사관에서 그를 만났다. 1957년 「로오마」의 평신도 세계대회 때에 237,000명 「일본」인 신자들의 「M. D. 하세가와」 대표가 『250년간의 박해시대가 지나간 일본에서는 교회가 새로운 뿌리를 박기 시작하였고 최근 10년동안 신자수가 배가하였다.
오래된 종교인 「불교」와 「신도」(神道)는 크게 퇴보하여 전통을 버린 2천만이 종교적으로 공허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1952년에는 <비오 12세> 성하께서 「일본」에 향하여 특별한 부활절 멧세지를 보내어 물질면의 향상에 따라 그 나라가 처한 영혼의 위기를 경고하셨다. 특히 「독일」 「켈른」의 추기경은 「도오꾜」의 가톨릭대학을 원조하고 있다.
금번의 승진은 그 나라에서 우리 교회의 위신을 더욱 올린 것이다.
필립핀人
「필립핀」인 <루휘노 J. 산토스> 대주교는 1908년 8월 26일에 탄생, 1947년에 주교품을 받았다. 특히 최근에 「마닐라」에서 국제대회가 많이 거행되었는데 내가 1955년에 평신도사도직 대회에 참가했을 때에 처음으로 1천6백만 신자가 있는 나라의 수도를 구경하였다. 그것은 가톨릭 인구수로 보아서 세계에서 제10위를 차지한다. 나는 2년전에 그 나라에 가서 <아가지아니안> 추기경이 임석했던 주교회의에 참석했고 작년에는 「빡스 로마나」대회에 참석하였다. 사실은 「필립핀」인 추기경 임명은 오래전부터 기대되었던 것이다.
아프리카人
종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특별한 관심을 끄는 「아프리카」의 첫 추기경 임명은 전세계를 통하여 환호할만한 일이다.
<비오 12세> 성하께서 1957년에 『아프리카의 장래』에 관한 회칙(回勅)을 내려 『최근 수십년간 「아프리카에서의」교회발전은 전 그리스도신자의 기쁨이오 자랑이 되는 원인이다. …나는 여러나라마다 성직계통을 세우는 동시에 많은 「아프리카」인 사제들을 양성하여 완전한 사제직을 봉행케 함을 기뻐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눈비시다고 할만큼 가톨릭 생활이 새로 번영하고 있다. 257개 교구에 산재한 교우수가 약 2천만에 가깝다. 전세계 인구의 8%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총인구의 8%가 가톨릭이다. 이 젊은 동 「아프리카」의 주교 <라오레안 루감봐> 각하는 1912년 7월 12일에 탄생하였다.
나는 그를 화란 「님에겐」의 전례대회(典禮大會) 때에 만났다. 여러분의 「아프리카」인 주교들 중에 그는 말을 잘 안하는 성격이었으나 학식이 많았다. 1948년에 「로마」에서 「까논」법을 연구하였다. 귀국후 1952년에 「루라보」에서 주교로 임명되었다. 1953년에 「루라보」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교구는 총인구 130,540명중 53,293명이 신자인 바 25인의 「아프리카」인 사제들이 다스리고 있다. 그의 산하 교우수는 「부코바」지방 총인구의 3분지1을 약간 넘는다.
1953년에 그가 자기 교구의 정세를 설명하여 『이 지방에서 가톨릭의 장차의 번영을 위하여 성소의 물질을 보장하는 것이 큰 걱정이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은 즉시 행동을 요구하는 위협이다』
1939년에 <비오 12세> 성부께서 「아프리카」인 첫 주교 <요셉 키와누카> 주교를 친히 축성하시고 그에게 『<반달>들과 <모하메단>들의 침범으로 중단되었던 <아프리카>의 성직계통을 그대안에 재건한다. 그대는 힘차게 일하라. 내가 더 많은 <아르피카>인 주교를 임명하는 것이 그대의 성공에 달렸다.』고 말씀하셨던 바 이제 24위의 「아프리카」인 주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