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듸오 講座(강좌)] 현대와 종교
발행일1960-03-20 [제221호, 2면]
1960년을 맞이하면서 HLKB 부산방송국에서는 매월 제4주일 아침 6시10분부터 시작되는 종교시간을 천주교회 신부에게 배당하였다. 천주교회라고 하면 소위 종교개혁(宗敎改革) 이전에 존재하던 골동품과 같은 종교체계(宗敎體系)이거나 혹은 종교개혁 이후에 생겨난 통칭 예수교와 혼돈하여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여러 교파중의 하나이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따라서 천주교회의 신부가 방송시간을 배당받았으니 청취자들에게 천주(天主)를 소개하고 천주교회의 입장을 바로 인식시키는 것을 주목적(主目的)으로 삼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의 공통된 기대일지도 모른다. 사실 교리상(敎理上)의 차이점 때문에 서로 자기의 교파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라 불리우는 여러 교파들간에는 없지못할 필연적 현상이로되 우리 한국의 실정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신봉(信奉)하는 신도(信徒)들의 수가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더러 구주(歐洲)의 신앙분렬(信仰分裂) 당시와 같은 감정적 대립(感情的 對立)도 있을 수 없으니 우리 겨레의 대부분은 어느 교파가 옳고 좋으냐를 묻기 전에 먼저 종교 자체가 과연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인가 하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 질문에 만족한 해답을 주는 것이 급선무(急先務)인듯하다. 그래서 다른 여러 그리스도교파와 대립되는 천주교회의 교리(敎理)와 입장을 밝히는 것도 중대한 일이겠으나 그보다 먼저 어느 교파에나 공통되는 종교일반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을 해명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꾸며진 방송내용이므로 예비신자들을 위해서 가톨릭시보에 옮겨 보기로 하였다. 제한된 지면과 주간이란 정기성을 고려해서 내용의 신축성(伸縮性) 있는 수정이 불가피한 조건이다. 이점 널리 양해해주기를 바란다.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종교는 주관적 종교와 객관적 종교로 구별해서 정의하는 것이 일반종교학자들의 태도이다. 주관적 종교는 절대자(絶對者)에게 혹은 신(神)에게 자신이 속하여있다는 인간의 자아의식(自我意識)과 그 신에게 공경(恭敬)을 드리려는 마음의 경향(傾向)을 마랗는 것이고 객관적 종교는 인간이 신에게 속하게 되는 진리와 법과 의식(儀式)의 종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하면 전자보다 후자를 말하는 것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관계에 관한 진리와 그 진리에서 필연적으로 귀결(歸結)되는 인간의 의무, 즉 선(善)을 행하고 악(惡)을 피해야 한다는 양심에 뿌리박힌 윤리법칙(倫理法則)과 신을 공경하고 신에게 감사드리며 자신의 죄과를 뉘우치고 신의 도움을 청하는 종교적 의식, 이 세가지를 기본요소로 삼는 것이다. 이 삼요소(三要素) 중에서 어느 한가지만이라도 결여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때문에 원시불교나 고대유교(古代儒敎)는 절대자와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종교적 진리도 명백치 않을뿐더러 종교적 의식을 전혀 갖추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그것은 참된 종교가 아니라 순윤리체계(純倫理體系)라고 판단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니 믿음의 대상인 진리와 행위의 규범인 윤리법칙과 종교적의식이 구비(具備)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그것을 참된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가지 종교의 기본요소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종교적 진리일 것이 분명하다. 일정한 종교적 진리에서 필연적으로 일정한 윤리법칙과 일정한 종교적 의식이 귀결(歸結)되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적 진리에는 또다시 앎의 대상인 기초적 진리와 믿음의 대상인 순종교적(純宗敎的) 진리의 구별이 있다. 앎의 대상인 기초적 진리는 모름지기 철학적 진리라 함이 마땅할 것이고 믿음의 대상인 순종교적 진리는 신학적 진리라 함이 옳을 것이다.
철학적 기초가 튼튼하면 그 위에 세워진 신앙생활도 건전하여 안정될 수 있지만 철학적 기초가 튼튼치 못하면 일시적 감정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해도 빨리 식어지기 쉬운 극히 불안정된 종교인 바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순감정적 신앙행활은 다행히도 아무런 외부의 풍파도 없다면 어느정도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겠지만 만일에 외부(外部)로부터의 풍파가 닥쳐오면 곧 새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포기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어떤 신앙생활에 들어가면서 동시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종교의 근본문제들을 해결지울 필요가 있다. 지력(知力)과 지식의 정도를 따라 다소의 차이는 없지 않겠지만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를 믿어 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빋을만한 것이라고 보장해줄 수 있는 지적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은 공통된 요구조건인 것이다.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반디시 해명되어야 할 종교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은 신의 존재 인간영성(靈性) 후세(後世)의 존재 등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 세가지 기본 문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중 어느 한가지만 철저히 해결짓는다면 남은 두가지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고 반대로 어느한가지가 의심스러우면 다른 두가지도 함께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들을 해결짓기 위해서라면 일생의 노력도 아까운 것은 아니리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