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눈으로 보는 2백년
강원도 산골에 가톨릭 푸로덕슌 춘천에서 서기호 記
우울한 성인이 있다면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 아빌라의 데레사
발행일1960-03-20 [제221호, 3면]
한국 가톨릭 교회사에 관한 최초의 천연색 영화를 제작하느라고 수개월 동안을 단 두 사나이가 강원도 일대의 백성을 동원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약간 점액질이나 언제라도 명랑하게 웃을 수 있는 몸집이 굵고 키가 크고 초록색 샤쓰를 입은 친구인데 그가 「뉴지란드」에서 온 <보함> 신부님이다. 그는 몇해전에 「휘지」 군도에서 영화제작에 종사하다가 한국에 오기 전 수년동안을 일본에서 지냈다. 또 하나는 정반대로 흰색 샤쓰를 입고 몸집이 작으나 예술가에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한 감수성을 지니고 <보함>보다 더 흥분하기 쉬운 친구로서 그는 「애란」인 <던> 신부님이다. 현재 「와싱톤」의 NCWC의 사진통신원인 그는 미국 「마세트」대학에서 사진교육을 받은 후 「네부라스카」주 「덴버」에서 발행되는 유명한 미국의 가톨릭 신문 「레지스터」지의 사진부원으로 있다가 사진가로서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자 「칼리포니아」에 가서 「사우스칼리포니아」대학에서 3년을 더 공부하였다. 그는 1958년에 한국에 온 이래 이제 거의 완성되어가는 이 한국교회사의 「씨나리오」를 엮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영화의 제작에는 많은 노동조직, 저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씨나리오」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에 이 영화의 장면을 몇군데 추려본다.
○… 첫장면 200년전. 깊은 산중의 어느 낡은 절간에 모인 우수한 선비들이 (그중 한 분이 중국서 가져온) 그리스도교 서적을 가지고 명상하기도 하고 토론하기도 한다. 새로 알게된 교리를 더 알고싶어하는 그들이 중국으로 대표자를 파견한다. 그다음 중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가 압록강을 건너서 입국하여 서울서 교우들을 만나서 비밀히 교리를 가르치는 장면. 이어서 <주> 신부를 투옥하는 포졸들이 나타난다.
○… 다음 이야기. 한국의 성교회는 신부가 없다. 교우들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산중의 작은 마을에서 옹기를 굽기도 하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니지마는 복음을 전파한다.
○… 다음장면. 처음으로 불란서 선교사들이 들어온다. <모방> 신부님 <샤스땅> 신부님. <앙베르> 신부님. 배를 타고 해로로 상륙- 상복으로 갈아입고 상제로 변장. 이상의 장면들은 그 두분의 「골롬반」 신부님이 완성하였다나. 그 과정중에는 여러가지 난관이 있었다. 배우들이 모두 아마츄어에도 못가는데다가 생전 처음으로 당하자니까 자기 역할을 납득하기 위해서는 한 장면에 참으로 여러 번의 예습이 필요하였다.
○… 그다음 <김 안드레아> 신부의 투옥.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 <김> 신부님이 「샹하이」를 떠나서 위험한 항해를 오해 계속하고나서 간신히 상륙하자마자 선주(船主)와 함께 붙잡힌다. 선주는 교우가 아니었지마는 <김> 신부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한가지로 투옥된다. 감방에서 같이 갇혀 있으면서 자기의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신부가 그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를 준다. 여기 나오는 선주의 역할을 하디로 <임 도밍고>라는 늙은 농부영감이 선발되어 <던> 신부님이 그에게 그가 할 연기를 가르쳤다. 사진에 박히본 일이 없는 <임>씨는 카메라 앞에서 동작까지 하게된 것을 퍽 좋아했다. 그 대문을 촬영하는 날 사람마다 자기가 맡은 자리를 잡은다음 카메라가 돌기시작했고 배우들의 연기가 진행하였다.
그때 어떤일이 돌발했던가. 졸지에 <임> 노인이 동작을 중지했다. 카메라도 정지했다. 『나는 옥에 안들어가요!』 그 노인의 고집이 다짜고짜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진을 찍어야할 동안만 그 옥안에 그저 몇분동안만 앉으면 그만입니다』라고 <던> 신부가 달랬다.
『아니 아니 나는 옥안에는 안들어가요. 내 집안에서 옥에 갇힌 사람이란 대대로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임>씨가 항의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잠시 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카메라 아에 나설 사람을 새로 물색할 때까지 이 장면은 촬영할 수 없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임>씨는 다시는 카메라 앞에 나타나지 아니하였고 그 『옥』일 때문에 그다음 주일에 성당에도 안나타났다. 그러나 다음 기회에 <던> 신부님이 대궐 안 장면을 촬영해야 했을때 <임>씨는 <왕> 노릇을 하는 역할을 얼른 수락했다. 자기 집안에서 왕이 하나도 난 일이 없었으면서도! 그러고 난 다음부터 그는 다시 열심으로 성당에 다녔다.
○… <김> 신부의 투옥과 「한강」변의 사형 장면이 끝나면 카메라는 딴 나라로 돌려진다. 「프랑스」의 어느 수녀원. 때는 순교한 「프랑스」신부님들 가운데의 한분인 <부레따니에> 신부님의 어렸을 시절. 그 당시에 그의 형님이 「파리외방선교회」의 신학교장이었다.
이 교장신부님이 확인한 바 <부레따니에> 신부님의 순교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상한 이야기.
그 신부님의 아잇적 그의 부모님이 그에게 장미모종 여러개를 들려서 그 수녀원으로 가져다가 수녀들에게 주었다. 그 수녀들은 미소를 띄고 그 장래의 선교사가 내미는 그 장미 모종을 받아서 수녀원 뜰에데 심었다. 그러나 몇해가 지나도 가지만 무서아였고 꽃이 한번도 안 피었다. 그러는 동안 소년이 신학생이 되었고 신부가 되었고 선교사가 되어 한국으로 파견되었고 마침내 순교하였다. 그가 순교하던 바로 그 해에 그 수녀원에 심었던 그 장미에 꽃이 일제히 만발하였다.
○… 박해시대가 지난후 1866년 평화로운 장면. 건축되는 성당. 서울 대성당의 건축 공사. 그 성당내부의 건축공사. 한 전형적인 사실- 개종한 <민>비가 <뷰떼르> 주교에게 세를 받는 장면. 그의 장부가 최대로 무서운 최후의 박해자이었던 것인데!
○… 마지막 이야기. 평화와 공포가 한데 얽히는 현대. 다른 전교회들이 들어온다. 「메리놀」 회원들 「베네딕틴」 회원들 「골롬반」 회원들.
북한 괴뢰군 남침으로 「호랑이」라는 별명의 잔인한 괴뢰군 장교의 지휘아래 편성된 「죽음의 행진」을 강요당하게 되자 그 여러 전교회의 몇몇 신부들이 한데 참가한다. 길고 긴 보행의 행렬 도중에서 <손톤> 중위가 그 「호랑이」의 권총에 맞아 쓰러지고 <번> 주교를 묻고 눈먼 수녀를 부축하면서 걷는 「깔멜」수녀들. 이러한 장면들이 강원도 지역 안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춘천」서 작년에 실지로 거행된 구 주교님의 한국신부 서품식으로 끝난다. 또 <던> 신부님의 구상중에 있는 장면은 작년에 「아가자니안」 추기경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촬영된 실사- 그 추기경께서 순교자의 무덤 앞에 장궤하고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서막이 될 것이다.
○… 이상과 같은 한국의 고대와 근대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던> 신부님과 <보한> 신부님은 여러가지 준비공작이 필요하였다. 「한강」변의 참수사형 집행의 장면에는 500명의 구경군으로 동원되었다. 또 옛날 의상은 이제는 더 입지 않는다. 그래서 <던> 신부가 「서울」박물관에 가서 그 당시 풍속대로의 의상을 자세히 연구하였다. 포졸의 옷차림 대궐 안의 광경. 왕비의 예복 등등 옛날 의복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이 영화에 딱 들어맞도록 신조(新造)하였다.
○… 이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스」 신부님들은 다 수염을 길렀는데 오늘날에는 수염을 기른 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두분 신부님은 온 한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염을 기른 신부님을 찾다가 「대전」교구에서 발견했는데 그가 바로 최근에 돌아가신지 얼마안되는 <뽀요> 신부님이었다. 그 어른이 「주검의 행진」에 글려가서 별세한 <공베르> 신부님의 역할을 하였다. 일평생 영화구경을 할 일이 없었던 그가 성격배우 노릇을 썩 잘 하였던 것이다.
○… 대궐 안 장면에서도 수염이 필요했다. <던> 신부님이 늙은 농부들을 화장하고 분장했는데 아침 여섯시부터 시작하였다. 그 농부들의 얼굴에다가 털을 하나씩 붙이기 시작하였다. 세시간동안 정성을 드리고 나니 수염이 보기좋게 되어서 제법 왕족의 위풍이 당당하다. 다른 배우들- 왕비 등등이 나오는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하느라고 시간이 지나서 정고가 되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려서 그 위엄이 뚝뚝 듣는 수염을 모조리 씻어 없앴다. 다음날 아침에 <던> 신부는 또 여섯시부터 그 왕족의 수염을 다시 만들어 붙였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장면들이 그 이야기의 사실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박힌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골롬바」와 「아녜스」의 감옥은 이 영화제작 본부인 「홍천」에 건설되었다. 성당 가까이 있는 운동장에는 한편만이 있는 미완성의 가옥들이 건축되어 있다. 서울에 있는 대궐의 장면들은 광선관계와 전선들 때문에 불가능하다. 무성한 장미꽃의 장면은 명년에 촬영할 것이나 「프랑스」에서가 아니라 「미국」의 어느 수녀원에서 할 것이다. 「미국」에 돌아가서 <던> 신부가 이 영화의 편집과 반성의 녹음을 할 것이다. 상영에 이르기까지는 아마 서너달이 더 걸릴 것이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때는 말을 안한다. 그 장면마다의 설명은 미국의 배우가 할 것이다. 우리 비범한 교회사의 이 영화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오스트랄리아」「뉴지란드」「영국」「애란」에서 상영될 것이다. <던> 신부의 또 한가지 소원은 한국어판의 복제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독일」어 사용의 각 국민들을 위한 복제를 만드는데도 역시 여러가지 관련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 두분이 제작한 한국의 영화가 전세계를 통하여 한국의 친구들을 많이 만들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