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이여 즐거워 할지어다』
봉재중간에 “즐거워 하라”는 것은 좀 이상한 말같지만 그러나 분명 제의는 장미빛을 띠우고 제단 주위에는 꽃이 둘러있고 무거운 침묵을 깨친 오르겐은 화려한 선율을 읊조립니다. 여태껏 통회하라 보속하라로 일관된 봉재절의 외침은 오늘 아침엔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워하라는 초입경의 메아리는 여러곳에서 울려나옵니다.
가만히 반성하면 우리는 비록 흔연히 이마에 재를 얹고 나를 이기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에서 부활할 각오가 신통치는 않았지만 정성껏 대소재를 지키고 사욕을 억제하고 예절에 참예해온 덕분에 몸은 여위었으나 눈은 맑게 반짝이고 마음은 자유로워 가엽게 날듯한 오늘의 우리 자신은 분명 이때는 “구원의 때이라”고 들었던 봉재성절의 혜택임엔 틀림 없으며 육신을 과히 도운데서 마음이 변덕스러웠고 영혼의 소경됨은 죄생활에 탓이었어서 우리 영혼은 무겁고 부자유스러웠던 것도 깨달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먹는 것도 잊고 황홀한 심경으로 말씀을 듣기 위해 자기를 따르는 5천여의 군중에게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써 성찬(盛饌)은 못되나 기갈을 면해주신 기적을 보았읍니다. 긴 설명이 없더라도 이것은 자기를 봉재로 뒤따르는 주린 영혼들에게 성체성사의 간소한 음식으로 마음껏 배불리시겠다는 뚜렷한 약속입니다. 얼마나 흐뭇한 인정있는 약속입니까.
또 바오로 종도의 서간에는 예루살렘(성교회)의 자녀는 자유(성총)의 자녀요 노예(죄악)의 자녀가 아니므로 우리는 죄의 생활을 버려야 하며 또 우리는 천상 유업을 상속받을 적자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구속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성총의 자녀인 신자들의 자랑과 성체를 영하기 위해서는 죄의 생활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며 또한 우리 영혼의 자유 성총이 얼마나 귀하게 얻어진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자 그럼 죄로 씨워졌던 노예의 멍에는 동댕이 치고 미련남은 죄의 그나불 마저 끊어 제끼고 이 귀한 자유를 얻어야겠읍니다. 용기를 내어 많이 남지 않은 ”구원의 때”를 끝까지 굳굳이 지켜나갑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꼭 자유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복음의 군중에게처럼 우리를 푸른 잔디위에 앉게 하실 때 자기의 거룩한 몸으로 우리의 주림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모든 부족을 잊어버리고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이 될 것입니다. 『내 멍에는 달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_고 하신 말씀도 깨달을 것입니다 주여 예루살렘에 더 많은 즐거움을 주소서 아멘.
윤 다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