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UPI】 중국 「하이먼」(海門)의 <시몬 주카이민>(朱開敏) 주교의 유서(遺書)는 <안 프랑크>의 일기를 연상케한다. 「바티깐」 당국은 중공이 감시(監視)하는 방으로부터 1년만에 밀송된 92세 고령의 「예수회」원의 서간(書簡)을 발표하였다.
<주> 주교는 중공에 항복아니한 댓가를 치렀던 것이다. 그의 서간중에는 『내가 마치 전염성 나환자나 된 것처럼 그들이 나를 격리하였읍니다…… 그들은 신부들과 신자들의 마음에서 신앙을 떼내려고 하고 있읍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1926년에 <비오> 11세 교황이 축성한 첫번 중국인 주교들 중의 한 분인 그는 소위 『애국적 교회』에 가담하기를 거절하였다. 『애국교회』는 「로마」에 충성(忠誠)하는 신부로 대치(代置)하려는 것이다.
<주> 주교는 1958년에 공산당이 은퇴케 하였으나 주교직의 상징인 목장(牧杖)과 반지를 내주기를 거절했던 것이다.
「바티칸」 당국은 동주교의 서간을 순교자의 서간이라고 말하였는데 서간문의 발자취는 다음과 같다.
□ 서간발취 □
1955년 3월 23일.
『나는 1955년 9월 8일 이래 일체의 자유가 거부되었읍니다 나의 방은 감시되고 밀페되었읍니다. 『애국교회』에 가담하라는 중복되는 압박이 내게 가해지고 있읍니다…… 나는 완강히 거절했읍니다. 1개월 반동안…… 나의 집이 무장한 위병(衛兵)의 엄밀한 감시하에 있었읍니다. 나는 매일 취조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욕설을 했읍니다……』
1957년 12월 5일.
『나의 신부가 아직도 여덟명이나 수감중에 있읍니다…… 한명은 죽었읍니다…… 수녀들은 모두 용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돠고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도하게 하십시오……』
3월 3일.
『우리 친구들이 나와 친근한 몇 사람을 속였읍니다……』
1958년 9월 3일.
『나는 교황께 대한 공격을 찬성않는 이유로 정치적 반동분자로 단죄되었읍니다…… 대가 마치 전염성 나환자처럼 그들이 나를 격리했읍니다…… 나의 신부들이 나를 면회하고 내게 문의하는 일이 금지당했읍니다. 그대들의 기도로 나를 돕기를 간청합니다…… 내몸을 내맡기는 시간이 빨리 오도록』
최근에 <주> 주교의 『내맡기는 시간』이 왓다는 소식이 왔다. 그는 서거하였다.
◇ 朱 주교 略曆 ◇
「홍콩」에서 알려진 소식에 의하면 92세의 중국 최년장(崔年長) 주교인 <시몬> 주 (朱開敏) 주교는 2월 27일에 서거하였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이먼」(海門)교구장인 주 주교는 공산당에 의하여 수년래 그의 주교직의 모든 행동이 금지되고 자택에 구금되어 있었다. 계수회원인 주 시몬 주교는 1926년 「샹하이」(上海)에서 탄생했으며 1926년 처음으로 중국인 주교가 한꺼번에 임명된 여섯분 중의 한 분이다.
1946년 이래 「하이먼」교구의 교구장으로 계셨으며 최후까지 「로마」 성청에 대하여 충성을 지켜왔다. 그때문에 공산당의 심한 압받을 받아 90세 되던 1958년부터 중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