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은 우리 앞에 뫼신 십자가나 모든 성상은 자주빛으로 가리운 채 우리 마음을 슬픔에 애타게 합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군중과의 심상찮은 싸움을 전해주며 마침내 격노한 군중은 돌로 치려 들고 그리스도는 재빨리 피신을 하시고… 아무래도 끝장이 내다보이면서 두렵기 한이 없읍니다.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을까요?
그 까닭을 끝까지 추궁하고 싶은 심정은 우리의 신앙이 요구하는 의분(義憤)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유데아 사람에게 새 생활을 요구했고 수많은 기적으로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였기에 전 주일만 하더라도 그를 왕으로 뫼시겠다고 동분서주하던 그 백성이나 선민(選民)이란 허울 믿고 좋은 것 독차지 하려던 욕심이 하도 사나워 그리스도를 기적으로 배불려 주는 왕으로는 덕보고 싶으나 죄 버린 새 생활을 강요하는 계몽가(啓蒙家)로는 도대체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던 사연은 우리도 짐작이 갑니다. 그래 이러한 감정과 뻗어가는 욕심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에 와서는 『내 말을 듣지 않음은 천주의 아들이 아닌 연고라』고 잘라서 선언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유데아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사마리아」인이다』 『부마(付魔)했다』는 폭언으로 응수할 뿐 아니라 돌로 쳐 죽이겠다는 방극한 일로 발전된 것입니다.
어느모로 보나 유데아인 보다 손색이 없는 은혜를 많이 입은 우리도 오늘의 이 사태를 남의 일로만 방관할 수 없는 절박한 입장에 당면해 있다는데서 슬픔에 잠긴 전례(典禮)의 표현을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도 누구 못지않게 마음과 입으로는 살신(殺神)을 꺼린다고 자부하나 우리도 선민으로서 덕보고 싶은 마음 간절한 따위의 인간이고 우리의 비행을 까세우는 바른 말에 귀를 거들기 인색한 고집이 별라고 악을 찾아 뉘우치는 참회는 대견하게 생각하는 악에 둑어져 가는 인간일 때에 우리의 구두선(口頭禪)과는 달리 우리에게도 선민의 살신극(殺神劇)이 우리의 심금을 뒤흔드는 왜가리로 뼈에 사무침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데아인들도 한때는 비상한 열성으로 『야-베』 천주를 섬겼고 자주 머리에는 재를 얹어 재계(齋戒)했고 만방에 놀라운 신전에서는 번제(燔祭)의 하늘찌르는 불길이 쉴사이 없이 올라 속죄의 힘찬 제사도 되었겠건만 우상에 비친 도야지 고기 한 점 안먹기 위해 무수한 치명자도 낸 골돌한 신앙의 명색이 뚜력한 간선된 백성이었건만 원통하게도 현세적 욕망에 귀가 밝아서 조금씩 빗나가는 광선의 끝처럼 마침내는 걷잡을 수 없는 악에 굳어져 아주 장님이 된 오늘은 모든 훌륭한 것이 선을 몰아쫓고 그리스도를 살해(殺害)하는 망칙한 지경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네 은주에게 살해로서 갚음을 하다니! 그러나 이 망극함이 우리에 있을 예언은 아니기를. 때문에 오늘 십자가는 우리에게 가리우지 않았기를. 주여 우리를 습관된 죄에서 건져주소서 아멘.
윤 다위 신부 (필자 경주본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