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3월 23일 NW(西北)항공편으로 서독(西獨)주교단이 파견한 <한스 다니엘스> 몽씨뇰(準主敎)이 내한하였다.
독일 예수회원 <테오돌 겦피트> 신부의 영접을 받으며 비행장에 내린 <다니엘스> 몽씨뇰은 서독가톨릭신자들이 보내는 원조를 현장(現場)에서 더욱 효과적이며 실질적인 것이 되도록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을 발견하기 위하여 한국에 온 것인데 세계의 여러 가난한 나라형제들의 기아와 병고를 덜어주고자 일찌기 서독교우들은 사순절의 대재(단식)에서 푼푼이 모은 금액을 바쳐왔던 것이다.
서독 주교단의 요청으로 시찰과 파견되어 온 <다니엘스> 준주교는 한국에서 난민의 생활과 상태를 실지 답사하고 구제방법을 찾게될 것이다. 지난해 서독 교우들의 희생은 8백만불(3천5백만마르크)를 갹금(醵金)하게되어 이것을 세계각국의 난민에게 분배하였으나 구호필요 액수는 훨씬 컷던 것이다.
현재 「본」市에 있는 「본」대학계통의 『알베르티눔』신학원(神學院)의 원장으로 있는 <다니엘스> 준주교는 한국에서 4월 2일까지 가능한한 모든 난민집중지를 시찰할 예정이라 한다.
<다니엘스> 준주교는 내방한 본사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담화로써 왜 서독 가톨릭신자가 구호에 나서게 되었느냐는 것을 밝혔다.
『서독은 십수년동안 세계인류공동체(人類共同體)에서 격리되어 살아왔다. 제1차세계대전 후의 독일국민은 고난중에 있었고 그 난경에서 회복될 무렵에는 「나치스」 폭정의 쇄국(鎖國)주의로 말미암아 다른 국민의 환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것은 1945년까지의 일이었다. 지난 대전후 패전으로 인한 생활고에 대해서 독일국민은 외국의 원조를 받고 연명(延命)해 나갔을 뿐 아니라 「마아샬 계획」으로 산업경제는 부흥되어 일대기적이라고 일컬을만치 되었다. 또 개인적으로 독일국민은 외국의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원조를 받았다.』
더구나 <다니엘스> 준주교가 원장으로 있는 「본」시의 『알베루티눔』신학원 대학생들 중 10명이 폐결핵에 걸려있던 중 남아프리카의 구호식량과 의료원조로 회복하여 사제가 되었는데 이것은 서독의 젊은 세대(世代)에게 깊은 감명을 남기고 그 은혜를 갚을 의무를 느끼게 한 것이다.
세계는 『마스 콤뮤니케이션』의 발달로써 좁아졌다. 따라서 인류는 공동체의 의식(意識)에 각성되었을뿐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紐帶)를 긴밀히 할 방법 수단도 용이하게 되었고 그것을 초자연(超自然)의 목적에까지 이끌어 이용해야 하기에 이르렀다.
서독의 교우들은 세계의 어느 한쪽에서 굶주림과 병에 신음하는 인간에게 눈을 가리우지 않고 노인들은 노후(老後)의 안락을 위해서 저축한 재산을 바치고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로써 헌금하고 있다.
<다니엘스> 준주교는 다음점을 강조하였다. 즉 『이 기금은 바로 부유하지 못한 중산계급(中産階級)의 신자들이 갹출하였기 때문에 특히 조심있게 써야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