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각국에서 도덕과 신앙의 떳떳한 주장을 거스리는 소책자, 잡지 소위 문학이 얼마나 많이 늘어가는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작년만 해도 그 대부분이 도덕수준을 벗어난 550종의 신간잡지가 이웃나라 일본에서 퍼졌다.
「베트남」의 수도 「사이곤」에서 매주간 50종의 잡지가 인쇄된다. 그 출판물의 다수가 미국과 유럽 출판물의 복제이다 - 그 나라에서 수입되는 영화이 다수가 그러하듯이- 인간의 존엄과 정의와 애덕 대신에 호색(好色)과 성욕(性慾)을 표현하는 순수한 물질주의사상을 소개한다.
사람들이 호색에 있어서 자기절제(自己節制)에 약한 반면에 많은 신문과 소책자가 산아절제(産兒節制)를 장려하고 그것을 사회적 필연성이라고 일컫는다. <싸르트르> <싸강> <지드> <다를로> 따위의 허무주의자 및 물질주의자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자기들의 신앙과 적극적 세계관을 잃는가!
이러한 영향이 존재하는 한 가톨릭신자들도 관련됨을 뜻한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과 투쟁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도의 「케랄라」주의 2백만 신자들이 최소한도로 5종의 가톨릭 일간과 6종의 가톨릭 주간을 경영하고 있으나 그 전부를 합친 독자수가 겨우 126,000명이다.
「베트남」은 약간의 소규모의 교구신문 외에 가톨릭 잡지가 하나도 없다. 「대만」에서는 475종의 세속 잡지가 간행되나 가톨릭 잡지가 다만 2종 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얼마나 빈약한가!
가톨릭신문의 사명은 보도 및 어떠한 지식과 도덕적 태도를 지향하여 신자독자들을 훈련하여 그리스도신자로서 중요한 직책을 무엇이든지 완수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가톨릭신문은 그리스도교의 원칙을 가지고 여론 가운데로 침투하는 선두에 서야 한다. 작금 수년간 「케랄라」주에서 수백만부의 공산당 소책자가 배부되었다. 공산당은 어떻게 해서 그만큼 굉장한 출판선전에 노력할 수 있는가? 그들이 효과를 발휘하는 비결은 공산당원 각자의 개인적 희생에 있다. 만일 우리 교우들이 공산주의자들의 전반만 노력하면 -사소한 희생- 『경향잡지』 『가톨릭청년』 『가톨릭소년』 『가톨릭시보』와 같은 우리 정기간행물이 신자들과 외인들 사이에 그 영향을 배가(倍加)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사상을 보급시키는 가능성이 얼마나 가끔 있는가! 기찻간에서 대합실에서 다방에서 우리는 점잖이 담배연기를 뿜는다. 담배 서너까치의 재를 남기는 대신에 우리는 남을 위하여 그곳에 가톨릭신문 한장을 남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처음으로 가톨릭을 반대하는 것이 아닌 가톨릭교회의 글을 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덕을 가직하지만 말고 우리 이웃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신앙의 힘을 지니도록 우리지산을 위하여 기도하자!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