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심각한 희비 쌍극(双劇)이 성당을 무대로 박력있게 우리를 수난의 도가니로 끌고있읍니다.
위풍이 도도한 개선장군의 영접을 받으시는 엄위하옵신 메시아의 희극과 엉뚱하게도 심통(深痛)의 구렁에서 전율(戰慄) 애소(哀訴)의 단장(斷腸)의 그리스도의 비극! 이렇게 양극의 대조적인 씨인이 어느 장단에로 우리를 이끌려는 것인지 얼핏 분간이 안서나 그 양극의 연결된 저의(底意)를 캐지 못하고는 오늘과 오늘로 시작되는 성주간의 진미를 터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표면의 심한 기복(起伏)을 헤치고 밑으로 파 들어가면 『그리스도는 수난이 마땅하고 사람은 수난을 고비로 결정적으로 좌우가 갈라져 십자가의 추종자 아니면 갈바리아의 휘강이』라는 바닥이 들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앞길도 마치 좌우의 두 관문에 막혀 문을 골르기 전은 길이 없는 기로에서 판정이 서둘러지는 각박한 시각에 다은 짐작이 듭니다.
한마디로 생즉사(生卽死)의 왼길은 바리서이와 지도층 유데아인의 택한 길로서 암흑의 권세의 장단에 놀아 분간없이 날뛰며 마침내 눈에 가시인 메시아에 십자가의 휘강이로 살신(殺神)에 개가(凱歌)를 크리아막스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러 멸망의 과정으로 끝맺는 죽음의 길이요 사즉생(死卽生)의 바른 길은 그리스도의 택하신 길로서 한없는 멸시 고통의 구렁에서 신음 절규하며 극도의 고난에 쌓인 십자가의 죽음을 크리이막스로 찬란한 부활과 위엄떨치는 심판자로 군림하는 삶의 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사람 빠짐없이 사즉생의 삶의 길이 우리의 갈 길임을 다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야 하고 적어도 고난을 「치레네」의 <시몬>처럼 거들어야 합니다.
무수한 유데아인이 메시아를 앞장 세운 개선의 대열에는 앞을 다투었으나 『십자가의 미련』 앞에는 빠지기 바빴읍니다. 오늘 우리가 낙엽이 없는 상록수 빨마를 들고 십자가를 앞세운 대열에 참가하면서 이 가지의 싱싱한 불편이 우리의 의지이옵기를 다짐합시다. 또한 죽음에 가까이 참가 할수록 부활의 광채가 찬란하겠기에 마침내 극도의 나약에 시달려 하늘과 땅에 고스란히 저주받은 『짓밟힌 벌레』가 된 그리스도처럼 성부께 단장(斷腸)의 비명(悲鳴)이 거듭되면서도 고스란히 숨끊는 갈바리아의 패자(敗者)를 뒤따릅시다.
결코 우리의 고통은 헛되지 않을 것이요 결코 패자로만 썩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설욕(雪辱)과 우리의 보복(報復)은 성부께서 빛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여 빨마 푸른 잎의 무수한 영혼 오늘 너를 따르나이다. 호산나의 메아리 온 땅을 두루말며 치레네 시몬들이 한없이 앞 다투어 네 십자가를 거드나이다. 너 부활의 때에 이들에게 딴 사람 입혀주소서 아멘.
윤 다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