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女流(여류) 시그릿드 운셋트 (完)
발행일1960-04-17 [제225호, 3면]
성총의 작용은 모든 정성을 다하여 하나밖에 없는 진리를 찾는 그 착한 영혼을 차츰차츰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였다. <시그릿드 운셋트>는 그리스도의 진리만이 그를 어두움에서 해방하여 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진리가 너를 해방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천주(天主)를 생각하는 자유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뒤를 돌아보고싶은 유혹(誘惑)과 둘에 둘을 보태면 반드시 넷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도리 수 있다는 생각과 또 진실(眞實)은 각자(各自)가 제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망상(妄想)의 옛고장을 동경(憧憬)하여야 한다.
이와같은 여러가지 심전(心戰)을 겪고 숙고(熟考)를 한 끝에 1924년 11월 1일을 기하여 그는 마침내 로오마 가톨릭교회에서 영세성사(領洗聖事)를 받았다. 그는 『천주께서 당신 교회를 통하여 내게 주신 것을 몇마디 말로써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평화(平和)를 주신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평화는 현세적(現世的)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와같이 오래 걸렸고 심사숙고(深思熟考)된 그의 개종(改宗)은 마음의 혁명(革命)을 일으켰음을 의미하였다. 그는 「노르웨」 안에서 큰 비난(非難)을 받을 일을 한 것이다.
한편 자비(慈悲)스러우면서도 구령(救靈)을 위한 엄격한 규률(規律)을 가진 베드루의 교회문턱을 넘어서면서 그는 많은 지식인(知識人)들이 아직도 주저(躊躇)하는 그 난관(難關)에 관하여 세심(細心)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양심의 강제(强制)이냐? 아니면 양심의 자유이냐?는데 대하여 그는 스스로 대답하기를 『양심의 자유를 가장 존중하는 사람들은 내 생각에는 흔히 어떤 확고한 신념이 그들의 양심을 이끄는데 있어서 큰 이익(利益)을 가질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시그릿드 운셋트>는 개종하면서 미리부터 모든 가능한 결론(結論)을 맺었으며 그 결론은 모두 극적(劇敵)인 것이었다.
1919년 이래 그 부부(夫婦) 사이에 있어서 메울 수 없는 심연(深淵)인 종교적 문제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운셋트>의 남편이 아직 본 아내가 살아있는 이혼자(離婚者)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정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가 그의 걸작(傑作)인 『크리스틴 라브란스타』와 『올라브 아우뒨스센』을 쓰게된 것은 바로 이 일이 있은 다음의 일이었다.
1940년 7월 독일군(獨逸軍)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전체주의사상(全體主義思想)과 힘차게 싸웠으며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데 있어서 어떤 감상적(感傷的)이고 낭만적(浪漫的)인 동기를 주었던 루테루교도(敎徒)들과 논전(論戰)하였다.
<시그릿드 운셋트>는 1945년에 고국(故國)으로 돌아와서 1949년 6월 10일에 사망(死亡)하였던 것이다 이 이름난 가톨릭신자의 사망은 루테루교를 국교(國敎)로 삼는 이 나라가 국민장(國民葬)으로 장사(葬事)를 지내게 하였다. 그때에 「노르웨」의 하원의장(下院議長)은 다음과 같은 찬사(讚辭)를 공표(公表)하였다. 『…… 가장 위대한 「노르웨」의 중세시대(中世時代)에 관한 그의 훌륭한 문필(文筆)은 우리나라 문학의 걸작품으로서 길이 남을 고전미술(古典美術)의 장품들을 만들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전세계(全世界)에 들어내었을뿐 아니라 또한 자기 조국(祖國)의 이름을 전세계에 떨치었었다……』
그는 벌써 192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많은 상금(賞金)을 모조리 자선사업단체(慈善事業團體)에 바쳤으며 자기 손에는 한푼도 남겨두지 아니하였다.
<시그릿드 운셋트>는 여자로서의 자기 형편에 부하도니 모든 책임을 다하기에 언제나 주저하지 아니하였으며 항상 어떠한 고통(苦痛)에 대하여도 결코 원하지도 거부(拒否)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는 다른 여성(女性)들에게 미리부터 격렬(激烈)한 정욕(情慾)과 자기들로 이한 희생(犧牲)을 모르는 척 하는 폭한(暴漢)들과 엄연한 의무(義務)를 잊어버리게 하는 유혹에 대하여 잘 무장(武裝)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여성(女性)이란 가끔 숨어 있으면서도 인간사회의 조종자(操縱者)가 되게 마련이라는 신념(信念)을 부인(否認)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의 일생이 하나의 모범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인(偉人)』이라고 불리우기를 원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자기자신(自己自身)에 대하여 충실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들은 다를바 없는 하나의 여성이면서 이와같이 위대하여진 <시그릿드 운셋트>에 대하여 경의(敬意)를 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