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듸오 講座(강좌)] 便利(편리)와 幸福(행복)
과학은 생활을 편게 할 뿐 행복의 문을 열어줄 수 없다
발행일1960-04-24 [제226호, 2면]
인생은 괴롭다. 인생이 괴롭기에 고래로 현세(現世)를 가르쳐 고해(苦海)라 불러왔으며 괴로운 인생을 한탄도 해보고 인생고(人生苦)를 거스러 싸워도 보앗다. 그러나 고통의 완전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때문에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고통을 없이 하려는 것은 한낱 꿈이며 고통을 싫어하고 한탄하면 더욱 고통이 커질 뿐이고 고통을 잊어보려해도 온전히 허사로다』하였다. 지당한 말이다.
인생이 괴롭기에 행복을 찾는 마음은 더한층 강렬하다. 과학만능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인생고를 해소시키고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의 발전이 있을 뿐이라고 소리 높이 외친다. 괴로운 인생에 사후행복을 약속하는 종교적 신앙이란 것은 온전히 비관적인 것이며 무지의 소치라고 저들은 주저치 않고 단정해버린다. 그러나 저들은 과학발전이 인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또 제공할 수 없느 ㄴ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
과학은 인간의 현세생활을 보다 편리하게는 만들었지만 보다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하였다. 교통시설의 발달은 지구상의 거리를 단축시켰고 문화의 교류 상품의 교환 등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자연 「에네르기」를 이용하여 우주여행까지 기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분명히 놀라운 현상들이다. 백년이나 2백년전까지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현상들임에는 틀림없다. 이와같은 놀라운 과학발전이 결과적으로 인간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로되 급속도의 과학발전은 언제나 큰 전쟁을 유일한 기회로 삼아 왔다는 사실이 우리의 눈앞을 오히려 캄캄하게 만든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계를 발견하려는 것이 놀라운 과학발전의 직접적 동기였고 과학발전의 평리적(平利的) 이용이란 것은 전쟁이 이미 끝난 다음에 사람들이 제정신을 회복한 다음에 비로소 부르짖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새로운 과학적 이기(利器)는 언제나 심한 불안을 동반하여왔다. 공산진영(共産陣營)과 자유진영(自由陣營)이 핵무기(核武器)를 서로 많이 보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전체인류가 느끼는 불안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개인생활면에 있어서 우리들 실생활에 이익을 제공하는 과학적 이기들이 오히려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도 허다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利) 보다 해(害)가 크고 덕(得) 보다 실(失)이 많지나 않은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과학발전이 인간생활을 어느정도 편리하게는 만들었지만 불행을 감소시켜기는 커녕 오히려 불행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런 부작용(副作用)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현대인간이 과학적 물질문명의 화려함에 도취하여 인간으로서의 더 중요한 사정을 등한시 하였기 때문이다. 또 인생의 모든 문제 도덕 죄악 고통과 같은 제문제들을 과학의 힘만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망상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은 초과학적(超科學的) 세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과학 자체 안에는 과학발전의 건전한 동기도 있을 수 없고 과학적 이기사용의 법칙과 목적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과학발전의 건전한 동기와 과학적 이기사용의 법칙과 목적 같은 것은 과학자체를 멀리 초월하는 철학(哲學)과 신학(神學)의 진리가 규정지어야 하는 것이다. 이 중대한 사명은 종교가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종교만이 올바른 인생관과 건전한 세계관을 만인에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세계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인생의 생존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주어지는 해답이 곧 세계관이고 인생관인 것이다. 물질세계는 인간에게 이용당하되 인간의 행복을 더하기 위해서 이요오디어야 한다. 여기서 과학적 이기의 평화적 사용이란 지상명령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질전체를 창조하신 조물주의 엄명인 것이다. 이 엄명에는 종교인이나 신학자들만이 복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전체까지를 포함하는 전인류가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인생의 최후 목적은 완전무결한 행복이다. 그런데 이 완전무결한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은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이 실천되는 사회에 상호부조의 꽃이 필 것이며 개인의 현세와 후세의 행복도 더욱 왖너해질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체는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랑을 실천하도록 인간심정에 생리적(生理的)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니 인생문제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과학이 해결짓지 못하고 오직 참된 종교만이 해결지을 수 있는 것이다. 편리한 생활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불행한 것 보다 오히려 다소 불편한 생활을 하더라도 평화스럽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공통 심정일 것이다. 과학이 종교적 원리의 지배를 받으면 이생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데에 도움이 되려니와 과학이 종교적 원리의 요구를 거절할 때에는 백해무익한 불안만을 더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는 과학의 원시상태에서보다 오히려 과학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인생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