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主金融(민주금융)과 信用組合(신용조합)
세궁민구제의 방책
발행일1960-04-24 [제226호, 3면]
지난 3월 미국에 있는 신용조합전국연합회(信用組合全國聯合會)(CUNA)의 <마아토스>씨께서 내한하여 신용조합 설립(設立)의 전망과 기타 협동조합(協同組合)들의 시찰과 아울러 앞으로 한국의 협동조합이나 신용조합운동과도 다른 여러 자유국가들과 같이 긴밀한 유대를 맺게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바 있으므로 이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운동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전개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신용(信用)조합이라 하는 것은 사유재산제도(私有財産制度)를 기반으로 하고 상호봉사를 원칙으로 하여 만인에게 경제복리를 균등하게 분배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경제체제의 한 기구로서 금융과 흥신(興信)의 편익(便益)을 만민이 균등하게 활용하며 근면과 저축을 장려하여 부국안민(富國安民)과 각 개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용이하게 성취하도록 지역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이념하(理念下)에 단합하여 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현하 우리나라의 경제실정은 지극히 불건전한 상태에 놓여있다 할 것이다. 거리에 방황하는 수많은 실업자군(失業者群)이나 또는 헐벗고 굶주리며 고리채(高利債)의 억센 사실에 얽매여 허덕이는 농어촌의 세궁민들은 마치 버림받은 백성이나 다름없이 문명의 은전이란 무엇인지 꿈에도 그려보지 못하는 반면에 온갖 불의(不義)의 방법으로 경제의 혼란기를 이용하여 일약 거대한 재벌로 등장한 특권층과는 너무도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비참한 사회상태를 초래하게된 이면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을 것이나 첫째로 위정자들의 비양심적이며 과도한 이기주의적인 행정과 그릇된 지도에 기인한바 컸을 것이오. 둘째로는 방종한 자유경쟁에 입각한 독점자본주의(獨占資本主義)의 밀려닥치늰 여파(餘波)로 올바른 경제질서(經濟秩序)와 조직된 체제를 수립할만한 민족적의식(民族的義式)이 박약(薄弱) 한대서 유래된 것이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년 전에 독일의 <슐츠 델릿츠>씨는 주로 도시에서 또 <프레데릭크 하이화이즌>씨는 주로 시골에서 거의 같은 시대에 그 지방인민들이 당하고 있던 극심한 빈궁상태를 구제하기 위하여 이 신용조합을 창설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부자들의 동정을 얻어 자선사업으로 빈민들의 곤궁을 면하게 해볼가 하고 노력하였으나 이런 동정은 결코 계속하여 받을수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돕는데서 힘이 생기고 서로 돕는데서 가난이 물러간다는 것을 깨닫게되어 조합원들이 한사람에 얼마씩 자금을 불입(拂入)하여 조합원의 조합으로 만들고 조합원들 중에서 유능한 사람이 나서서 그 조합을 담당하여 운영케하고 또 조합원들의 복지를 위하여 사업을 하게 함으로써 완전한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흥신금융제도(興信金融制度)를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불과 이십년 미만에 사백여개의 조합이 설립되었고 그때까지 고리대금업자(高利貸金業者)들의 독수(毒手)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던 빈민들이 점차(漸次)로 부채(負債)를 벗고 재산이 늘어나서 생활의 안정을 가져오게 되어 극빈자(極貧者)들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회는 차차로 명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신용조합의 복음은 국경을 넘어 이탈리와 그 밖에 구라파 여러나라로 건너갔고 또 다시 바다를 건너 북미주로 전파하게 되었다.
현재 전자유세계에 산재하여 있는 신용조합의 총수는 약 2만5천에 달하고 그 조합원 수는 이미 천4백만명을 돌파하였다.
우리나라의 현하 경제실정에 비추어 흥신금융(興信金融)을 민주화(民主化)하고 극빈자들을 그 참혹한 생활고에서 구출하여 자립경제의 안정을 기할 수 있는 협동금융제도로서의 이 신용조합의 설립 발전은 시급히 또 절실히 요망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되어, 불가분(不可分)의 한인격(一人格)을 이루고 있는 이만치 전지전선(全知全善)하신 천주의 계시된 진리가 우리 영혼생명에 필요함과 동시에 우리 육신생명을 유지발전하기 위하여 의식주(衣食住)에 요구되는 모든 경제적 요건이 또한 필요한 것이며 이세상에 있는 모든 물자와 인류의 유산은 만민을위하여 다같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골고루 분배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이 요긴할 줄을 너희 성부 알으시니 이러므로 머너 천주의 나라와 그의 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게 더음으로 주시리라』(마두 6장 32-33)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사회정의와 경제적 평등이 천주의 진리와 부합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셨고 교종 비오 11세께서는 그 교칙에 말씀하시기를 『……자기 일개인의 이익만을 위하고 인류공동의 복리를 경홀히하여 부당하게 임금을 올리거나 낮후는 것은 사회정의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의 각 부문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하늘에 계시는 한 아바저를 모시는 대가족의 식구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여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신비체를 형성하고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고락을 한가지로 하는 것과 같이 할 때에 비로소 인류공동이 복지를 위하여 단결된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인류사회는 두개의 세계로 갈라져 종교, 문화, 경제, 그밖의 사회 각 방면에 걸쳐 서로 배치되는 이념과 상반되는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여 모든 자유를 박탈한 후 금수와 같이 강제로 인간을 사역(使役)하고 있는 공산세계에서는 사회정의를 토대로 한 자유롭고 조화된 경제복리의 균등분배는 기대할 수 없는 것도 필연적 귀결이라 하겠으나 이 무도한 공산주의를 대항하여 싸워야 할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우리 한국은 너무도 경제조직이 불안정하여 빈부의 차가 그김하고 독점자본주의의 악현상이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난 이상 남과 같이 생존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노동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회질서에 결함이 있는 것이오 이러한 결점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무산대중이 기아선상(飢餓線上(에서 헤매고 농어촌세궁민(農漁村細窮民)이 빚더미에 깔리어 허덕이는 비참한 상태를 구출하기 위하여 상호봉사와 자조정신을 기초로 한 흥신제도와 금융흥건(金融興件)을 제공할 수 있는 신용조합운동(信用組合運動)을 광범위하게 전개하며 실천에 옮김으로써 민족장래와 후손만대에 번영이 길이 깃드리게 하도록 노력하기를 희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