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가능
산아제한은 오직 파멸을 가져올 뿐
발행일1960-05-01 [제227호, 2면]
항간에 이른바 『가족계획』이란 말이 떠돌고 있으며 몇개의 잡지를 통해서 볼 때 어느 계통에서는 상당한 예정 하에 선전보급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가족계획』이란 그네들의 말대로 가족의 수효를 계획적으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어느정도의 가족부양 능력이 있으니까 몇명의 가족을 거느릴 수 있다는 일정한 계산 밑에 자기 가족의 수효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서는 아이의 출생을 인공적으로 조절(調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언제이고 아이를 가지고 싶을 때 그런 때를 골라서 아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아무런 책이없는 탁상공론으로만 미뤄 치울 수는 없읍니다. 악(惡)의 수단은 기묘한 것이어서 그로써 인류가 곧 자멸하는 한이 있더라고 마치 불빛에 달려드는 여름벌레가 제 운명을 살피지 않듯 널리 퍼질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는 교리를 변호하는 정도의 소극적 태도에서 많이 아니고 실로 국가적 견지에서 마땅한 비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읍니다.
■ 인구가 줄면 잘 살 수 있을까
첫째 그런 행위(産兒制限)의 죄악성을 말하기 전에 과연 그런 직이 슬기로우냐 하는 것을 극히 타산적으로 생각해봐야 하겠읍니다. 말하자면 유익한 노릇이냐 무익한 노릇이냐 그보다 손해되는게 아니냐 하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읍니다.
그네들은 계획대로 『계획가족』이 원만히 되면 필경 인구는 대폭 줄게 될 것입니다. 연차로 방대한 인구가 줄게 되겠지요. 그리되면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될 수 있을까요. 좀 더 짧은 시간의 노동으로도 풍족한 댓가를 얻을 수 있을까요. 또 그것이 인간의 이상(理想)과 행복을 만족시켜준다고 하겠읍니까. 뭣보다 부요한 국가를 이룩한다고 하겠읍니까.
■ 민족적 자살
역사가 줄곧 타일러 주는 바요 오늘의 세계가 그러하듯 강력한 국가는 그안에 충분한 수효의 시민과 또 그 시민들이 건강하고 활발한 기상을 가지며 그 위에 도덕적으로 건전합니다. 그렇거늘 해마다 새로 탄생하는 아이가 줄어들기만 하면 어느 시기에 가서는 씩씩한 젊은층이 쑥 줄어질게 아닙니까.
제2차대전때 굴욕의 항복을 한 「프랑스」 의 <뻬땅> 원수는 방송을 통해서 『아이의 탄생이 없고 병사가 없었다』고 한탄하였던 것입니다. 산아제한이 오늘도 프랑스에서 실행되고 있는 줄 오전(誤傳)되고 있읍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프랑스」에서 만일 정당한 이유없는 유산(流産) 등 태아살해(胎兒殺害)를 돕는 의사가 적발되면 즉시 형법에 의한 처벌은 물론 철저히 면허를 취소하고 있읍니다. 산아제한을 남먼저 서두른 그들은 과연 어떤 고배(苦盃)를 마셨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터입니다.
■ 물길에 덤비는 여름벌레
국가 사회적으로, 바로 말하면 민족적 자살을 감히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얼른 알아들을 수 있겠읍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소위 『가족계획』을 막상 실행하고 나면 그일에 온 신경을 쓰게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읍니다만 실은 큰 문제 입니다. 오직 성욕 충당의 보다 강력한 그 방면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기를 쓰게되는 나머지 가정의 건전성은 허물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필경 그로인한 정신병을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성욕에서 오는 즐김을 최대한으로 확대해 가지고 거기 사로잡혀 마치 깊숙한 늪속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인간 안에 파묻혀 있는 강력한 그런 욕망은 자제(自制)할 수도 없이 자멸(自滅)로써만 해결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인간은 그가 가지는 위대한 책임을 항상 거기 동반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성(性)의 본질은 오직 즐김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위대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여한 즐김(副次的, 第2目的)과 부수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性) 본연의 자세(姿勢)를 무시하고 다만 그 즐김만을 인정한다면 그야말로 눈밑에 코를 그리지 않고 코밑에 눈을 그려 놓는 거와 같다고 하겠읍니다.
『가족계획』은 참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위대한 책임을 등진 망상이라고 하겠읍니다. 『가족계획』은 지난 날의 모든 역사와 경험을 전혀 무시한 엉뚱한 이론입니다.
■ 가정 파멸에의 줄달음질
가족은 사회의 일단위입니다. 따라서 한 가족은 한 나라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계획』은 건전한 가정을 파괴할 뿐 아니라 가족의 존립(存立)조차 그 밑바탕으로 부터 뒤흔들어 놓고 말 것입니다.
미국의
이제 우리는 솔직히 지적할 수 있읍니다. 『가족계획』운운하는 저의(底意)가 어디있음을. 성행위의 무절제(無節制)가 신체조건을 파고한다는 것을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연법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이고 정상적으로만 행위되기를 요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무절제는 이런 자연법칙을 어기고 필경은 스스로 불행을 불러들이고 말 것입니다.
<제임스 융그> 박사라고 하면 산아제한론을 지지한 자로 알려진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933년 2월 11일 『이 문제(산아제한)는 더 호가실한 연구가 필요하며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그는 산아제한을 죄악으로 판정하는 가톨릭의 견해를 드디어 지지하게 되었읍니다. 인공적 산아제한은 모체(母體)의 건강을 결정적으로 해친다는 것을 권위있는 산과의(産科醫)들은 경고하고 있읍니다.
최근 세계적인 정신과의(精神科醫) <미노느> 박사는 「시드니」대학에서의 연설에서 인공적 산아제한의 결과는 『여자에 있어 대부분 정신쇠약으로 이끌었다』고 단정하였읍니다.
여기까지 윤리적 방면에서 본 『가족계획』의 죄악성을 말하지도 않았읍니다. 인간이 윤리력(倫理力)을 잃었을 때 어찌 되었던 것입니까. 참으로 치가 떨리는 일입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손실을 가져오는 이런 선전(가족계획)을 왜 하고있는가. 그들은 심저(心底)에는 이를 통해 유물사관(唯物史觀)을 퍼뜨리자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