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春川(춘천)교구 編歷(편력) ③ 풍수원본당
70여년의 역사 지닌 본당
두메서 거행되는 성대한 성체거동
신부 18인 배출을 비롯해 자랑도 갖가지
발행일1960-05-01 [제227호, 4면]
풍수원(風水院) 가는 길은 험준한 산길의 연속. 영(嶺)을 다 넘었거니 하면 또 오르막 길. 횡성(橫城)에서 22키로라는데 노박이로 서서 지친 나머지 『아직 풍수원이 멀었느냐』는 물음에 퉁명스러운 차장은 『풍수원이 어덴데, 여기가지를…』 마치 일부러 승임(乘賃) 보다 더 탔음을 나무람하는 말투다. 당황해진 길손은 비좁은 틈을 헤치고 겨우 빠져나 내려보니 앞길 온길만이 틔었을뿐 좌우가 모두 첩첩한 산악 뿐이다.
서울로 통하는 길이라건만 도무지 인마(人馬)의 통래가 없다. 할 수 없이 『지났다』했으니 되돌아 갈 밖에. 30여분을 걸너내려 곧은 길에 접어 들자 저 멀리 우뚝 솟은 뾰죽집이 『나 여기있는 줄 몰랐냐』는 드시 내려다보고 있다.
역사 오랜 성당! 고향을 그리워하던 타향살이가 고산(故山)으로 돌아 올 때 자기 집이 눈앞에 보여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상이라고나 할까!
1888년 조선교구(朝鮮敎區) 당시인 고(故) <뮤텔>(민) 주교 시대에 서울 동대문 밖에서는 유일한 본당으로 설립되어 초대 주임으로 프랑스인 <레메르>(이) 신부가 부임, 7년간을 전교, 그 당시에 신자 수 2천명에 이르렀고 무려 12개군이나 되는 광범한 지역을 관할한 큰 본당이다.
1895년 <아오스딩> 정(鄭圭夏) 신부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신부는 「마레이」반도의 「비낭」신학교 출신으로서 참으로 불세출(不世出)의 위인이며 수많은 본당의 초석(礎石)을 마련한 이로 길이 추앙될 것이다.
그는 47년의 오랜 세월에 이 본당의 주임사제였거니와 그 당시(19세기말) 이곳은 밀림지대로서 인마의 거래가 극히 드물었기에 박해를 피하여 산줄기를 타고 이곳으로 교우들이 모여들었으리라 추측된다.
그 옛날 서울 종현(明洞)대성당 고층(高層) 공사의 완공을 세인이 의심하였다는 말이 있지만 1907년 이곳 산간 두메에 이같은 꼬딕식의 화려한 본당이 세워질 줄은 아마 상상조차 못하였으리라!
건축을 위해 현장 근처에 벽돌꿉는 굴을 박고 동량을 마음끝 다돔고 깍기에 남녀 교우가 단성(丹誠)을 다하여 즐거운 봉사로써 이 천주의 궁전을 이룩하기에 얼마나 열절(列節)했었으랴! 본당신부를 찾으니 쌰쓰바람의 호호인(好好人)이 나로라고 나온다.
<시몬> 김(金學用) 신부. 이 분은 이 본당의 제3대의 주임사제다. 홍천(洪川) 출신인 50고개를 넘으려는 이 신부님은 18년의 산역사로서 인근 주민의 신망을 모으고 있으며 아무 아무의 집은 어제 저녁거리가 어떠했으리라. 누구 누구의 집 쌀뒤주의 사정은 어떠하리라에 이르기까지 주민생활에 소상하다. 간혹 이웃간에 벌어진 시비(是非)에는 사설판관(私設判官)이 되어지기도 하는데 저들은 신부의 권고라고 순순히 따른다는 것이 또한 이곳의 순박성을 엿보게 한다.
바로 본당 아래 8백여명의 교우촌은 기름지지 못한 농토를 뒤져 생계에 자자영영(孜孜營營)하면서 완전히 신앙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6백명이 넘는 공소(公所) 지방인 서원(書院) 면내의 4개 공소는 토양(土壤)이 비옥하여 생활상이 보다 윤택하다는데 영육사정에 한결같이 마음쓰고 있는 이 신부님은 지방의 복지 증진과 문화 향상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외국문물과 사회시설을 접견했던 <아오스딩> (정) 신부에 의해서 세워진 서원(書院)은 이 산협의 유일한 교육시설이었었는데 8·15 후 국민개학(國民皆學)의 선편(先鞭)으로 국민학교령에 의한 도내의 유일한 사학(私學)으로서 1백2십명의 아동이 4명의 교원의 담당 아래 6개년의 전과정을 수학하고 있다.
『순교자의 유물이나 문헌(文獻)이 없느냐』는 물음에 『예수님 성 십자가의 편립(片粒)과 제성인의 유해』(최 도마 신부의 소지한 성물)를 보관하고 있으며 복자 최 방지거(崔京煥)의 유족이 살고 있는데 그 일문이 전에는 가세가 유족했었는데 많은 이가 타처(他處)로 전출했지만 대개가 4·5대의 구교우들이며 얕을지도 3대에 이르는 교우들이라 밝히는 한편 타지에서 전입(轉入)하는 미신자도 얼마를 지나지 않아 입신(入信)한믄 것이 상례(常例)라 한다. 그리고 이 본당은 오랜 역사와 함께 18명의 사제를 배출한 자랑을 갖고 있다.
김 신부는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의 자랑과 당면한 계획을 말한다. 그것은 강원도의 유일한 거교구적(擧敎區的)인 성체거동행사이다. 연면히 계속되기 37회 금년의 성체첨례로서 38회를 맞으리라 하며 예년의 경험으로 인근 각 본당으로부터 3천여명이 이 두메에 집합하여 그리스도왕께 신앙을 고백하며 선시(宣示)하는 신앙시위는 일대장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번 견진성사를 집전키 위해 오신 <귄란> (구) 주교를 맞은 그날밤 뜻밖의 화재로 사제관이 전소되었는데 주교의 특별한 뜻인 일야숙박비인 1백만환의 원조를 얻어 곧 복구공사가 시작되리라고 자랑과 함께 낭보(朗報)를 알리고 있다.
망예수부활의 밤중 예절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단 여섯 명인 성가대원의 「그레고리안」성가는 자랑하기에 넉넉함이 있다. 수수하게 차림한 수많은 신자(信者)를 이 모여든 부활미사를 전후한 성당 경내는 한끝 밝고 상쾌하며 진정으로 화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