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통곡 체읍할 것이오 세속은 즐거워하리니 너희는 근심하나 그러나 너희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리라(요왕 16, 20) 예수께서는 이 말씀으로써 고통중에 지내는 신자들에게 다시없는 위안을 주시고 향락중에 사는 악인들을 크게 경고하십니다.
1, 악인들의 쾌락의 생활
① 『세속은 즐거워 하리라』고 하신 <세속<이란 세상의 악인들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런 악인들의 세속일락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바오로> 종도께서 『때는 짧고 세상의 사태는 지나간다』고 하심으로 잠시 있다가 없어져버릴 세상 락에 마음을 붙이지 말기를 권고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은 수만가지 번민으로 동요되고 또 세상의 어떠한 안락이라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연고는 죄를 짓고 있는 그들의 양심이 고통의 씨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② 세속의 일락은 죽을 때에 참혹한 슬픔으로 변하겠읍니다. 일생을 죄악의 생활만 해온 악인들이 죽을 때에는 끝없는 후회를 하게됩니다.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모든 것을 영원히 차지할 것처럼 모든 애착을 다 붙였던 것을 졸지에 잃어버리게 될 때에 그들의 마음은 끝없는 애석감을 느낄 것입니다.
더구나 영원한 행복이냐 불행이냐 하는 최후의 심한을 받아야 될 것을 깨달을 때에 공포와 비애와 침울에 잠겨버릴 것입니다.
③ 세상의 쾌락은 사람에게 영원한 지옥벌을 가져옵니다. 잠간 살다가 죽을 세상에서 낙을 누리기 위하여 사후 영원한 형벌에 자기를 던지는 것은 얼마나 미련한 짓입니까.
2, 선인들의 고통의 생활.
① 선인들의 생애는 고통의 생애입니다. 금욕, 보속, 극기의 생활, 그외에 신앙 때문에 받는 갖은 박해 등등이 신자들의 생활을 쓰라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심중에는 깊은 평화와 신락이 있는 것입니다. 선자들이 많은 고통 중에서 참다운 위로를 받는 것은 후세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주는 것입니다. <치쁘리아노>는 『우리는 부서져 무너지는 세상 위에서 안온 침착하게 있다. 역경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고 병고도 원망을 발하게 못한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바라고 있는 무한한 선이 금새 고통과 대(對)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② 선자는 죽을 때에 기쁨을 맛보겠읍니다. 고통은 천주와 구령을 생각케 하고 쾌락은 잊어버리게 합니다. 구령사정을 잊어버리게 한 쾌락은 죽을 때에 악자들에게 끝없는 슬픔을 맛보게 하는 정반대로 구령사정을 생각케 한 고통은 선자들에게 다시없는 큰 즐거움을 주시겠읍니다. 『너희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곧 이런 뜻입니다.
③ 선자들이 세상에서 겪은 고통은 천당의 영원한 목락을 가져오겠읍니다. <바오로> 종도께서 『우리는 저(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천고만난을 겪으신 후에 영화로이 부활하시고 지금 천당에 가셔서 무한한 영광중에 만복을 누리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고통을 겪어야만 사후에 천당에 가서 그리스도와 같이 영생과 영복을 누리겠읍니다.
金成煥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