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과 우울
발행일1960-05-08 [제228호, 3면]
■ 혹독한 대조
사진을 찍을 때 나타내야 한다는 행복감과 당대문학의 애수와 우울 사이에는 혹독한 대조가 있다.
카메라 앞에 나타나자 마자 명령이 내린다.
『빙긋이 웃으세요』 사진사가 그대와 더불어 웃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개는 웃음 거리가 없다. 사실상 그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비인격적 물체나 다름없이 움직이는 F6으로 조절된 렌즈의 뒤에 숨는다. 그 말이 얼마나 지나치게 사용되는 가를 모르는 아마츄어 사진가가 『치-즈라고 하세요』라는 최후의 통첩을 준다. 그것은 그 말을 발음할 때 치렬(齒列)이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현상하면 정신빠진 바보의 얼굴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웃음 거리가 없는데 웃는 것이 미친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어느 중국인 철하자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들은 너무 웃는다.』
■ 조작한 미소
사진을 박을 때 미소하려는 우리 욕망을 「퓨리타니즘」에 대한 반동이라고 <체스터톤>은 늘 말했다. 「퓨리탄」들은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신을 처벌하려는 「신」으로 바꾼다. 그러한 감정은 그릇된 일을 보고 정정당당하게 격분하는 도의적 분노가 틀린 방향으로 비끄러진 것이다.
그러한 준엄성(峻嚴性)을 반대하는 항의에 사용되는 미소는 어떠한 것이라도 사실상 미소가 아니라 조소(嘲笑)다. 그러나 문제는 미소의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보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 당대문학의 감정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다.ㅣ
■ 성총이 없으므로
현대의 희곡, 소설, 평론의 우울, 애수, 비관에는 절대로 미소가 없다. 있다면 두개골의 미소다. 그와 같이 우리는 카메라를 볼 때는 명랑한 기분을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글이 쓰인 책장을 대할 때는 그것을 씻어버리고 운다.
문학을 통해서 이 시간의 감정을 반영하려는 책장에는 지옥의 우울이 있다. <카프카>는 거의 복음적 태도로 다루는 자기 경멸과 자기 혐오의 무게를 지니고 있으나결코 회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기 감정을 반영하는 옷차림까지 했다. 『나는 내 행동을 내 옷차림에 맞도록 했다. 다는 등을 굽으리고 어깨를 내밀고 팔과 손을 비트리고 걸었다. 그런 꼴들이 (내 생각으로) 내게서 피할 수 없는 추악을 드러내보였다.』
<그라함 그린>의 작품에 나오는 많은 인물은 그 용어의 뜻대로 도덕적 죄인이 아니라 신경병자들이다. 그들의 천성이 종교적이라고 생각되지마는 성총이 사실상 그들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는다. 성총은 그들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그들에게서는 별개의 존재다. <루터>의 말투로 하면 암닭이 날개로 제 새끼들을 품는 것 같이 성총이 그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거룩하신 모상』이 영혼 안에서 불처럼 타오를 때 반드시 그러하듯 성총이 내적 환희의 근원이 되지 않는다.
■ 가면을 쓰고
<호랑쏘아 모리악>의 기록. 그가 소설 구상에 있어서 어떠한 아름다운 행복한 인물이 상상에 나타나자마자 『일종의 유황 불』 속으로 넘는다. 인물마다 『무섭게 찌프린 상으로 판막혀버린 가면』을 쓴 일종의 초록색 물이 든 옷을 두르고 나타났다. 거개의 소설에서 사랑이 성욕과 동일시된다. 생활은 『어떤 사건 (an affairs)』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여성은 결혼으로 학대를 받는다. <시몬 더류보아>의 우울한 말투. 『성(性) 생활』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욕을 죽임으로써만 결혼이 성공하는 만큼 젊은 여성이라도 결혼을 유희화 한다.
문명에 분노한 젊은 남자들 『외부인(outsider)』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은 구원이 될 것을 증오하기 이외에는 할 도리가 없다. 그들 가운데는 자기 마음 속의 우울과 증오로 우리 성주(聖主)를 <히틀러>와 동일시한다.
■ 파괴
그 결과로 이 작가들이 권태를 자아내는 서로 다른 일들을 서로 충돌시켜서 흥분을 창조하려는 것이다. 우주의 뒤에 숨은 『로고스』와 『질서』와 『법칙』을 벗어나면 일체가 조소 거리다. 일체가 조소 거리인 세계에서는 조소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이 모두 어느편이 위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한 세계를 거꾸로 뒤집으려고 전심한다. 신이 없는 인간은 언제나 우울한 인간이며 그가 미소하는 것은 공동묘지 옆을 걷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 마다 파괴하려 나선다. <린 위탕>의 말처럼. 『장난꾸러기 아이놈이 시계를 뜯어가지고 바퀴, 잔 바퀴, 감긴 실철사, 태엽을 자기 앞에 늘어놓고 좋아하듯이 <피카소>는 물질세계를 해부해놓고 그것을 내관이라고 부른다.』 마귀는 신을 증오하기 때문에 이 세계를 파괴하고 싶다… 현대인은 자기우울 때문에 그와 같은 이유로 세계를 파괴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