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永川(영천)본당
발행일1960-05-15 [제229호, 4면]
영천(永川)은 대구의 동방 38키로 지점인 중앙선, 대구선의 분기점을 이룬 육상교통의 요충지(要衝地)다.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의 일의대수(一衣帶水)가 주춧돌 아래를 구비처 가는 언덕 위에 경쾌한 사태를 보여주는 영천본당은 1936년 10월, 파리외방전교회원인 초대주임 <레문도>(趙) 신부에 의해서 세워진 본당이다.
4년후 제2대인 <루이스 델랑>(南) 신부의 부임과 함께 교세는 활기를 띄는 한편 1946년부터 동신부의 보육사업에 관한 각별한 열의는 보육원의 설립을 보기에 이르렀으나 1950년 그 시설을 영일군 송정(松亭)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제3대로 <야고버> 이(李明雨) 신부가 착임하였으나 얼마를 지나지 않아 6·25동난으로 인하여 지리분산(支離分散)의 고배(苦杯)를 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몸서리치신 요운(妖雲)이 가셔지면서부터 시설을 수복하는 한편 유치원을 개설하는 등 활기를 회복한 동본당은 일증원가로 교세는 신장되어 마침내 1959년 12월에는 공소였던 의성(義城)을 본당으로 승격분리하기에 이른것이며 건설의 의욕 드높던 <야고버> 이 신부의 대구 전출과 함께 동적(動的)인 이 본당의 제4대 주임으로 <바스칼> 강(姜贊亨) 신부의 착임을 본 것이다.
성당 구내 깊숙히 들어가 금호강이 구비치는 절벽 위에 자리잡은 사제관인 『성사현』(省思軒)은 언른 보기로는 기발(奇拔)을 좋아하는 이의 하기(夏期) 별장 같기도 하다. 동서남북을 어디나 조망할 수 있는 운치만점인 이 집의 주인공 <바스칼> 신부는 돌연한 기자의 내방에 몹시 반가워하면서 인사를 치루기에 빈틈없는데 심망자의 심경으로 감개 깊은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5년이란 그리 짧지 않은 세월에 매양 어려운 문제만을 갖고 그의 사무실(교구 경리실)을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루포」를 위한 경쾌한 수작이 있을 뿐이다.
『본당이야기 좀 들려주시요』 했더니 『시골이야기 뭐 흥미 있을게 있오』
그는 그의 체격 그대로 무뚝뚝한 어조이다. 전임자인 <야고버> 신부에 의해서 의성본당이 설립되어 인집살림이 시작되었지만 1면 1개 정도의 공소를 우선 세월 목표에서 활동중에 있음을 밝힌다.
수많은 본당에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곳의 『샛별』유치원은 이름 그대로 양천읍에서는 샛별같은 존재다.
90푸로 이상이 미신자 가정의 어린이들이다. 비록 저들의 국민학교에 들기 전의 공백기를 메우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교회와 접선을 이루고 친밀도를 더으기에 큰 구실했음이 뚜렷하다. 이곳의 여러 기관장들의 가톨릭에 입신한 동기가 되었다고 한말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더불어 기여된 바 컸음에는 아무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위와같은 연관과 지방적인 사정에 연유함인지 유치원의 시설은 결혼식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데 원아들의 생활에 지장을 끼치지 않는 한 이도 또한 교회에 관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빈번히 있는 결혼식의 주례는 바쁜이를 더욱 바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가운 비명이기도 하다. 사제의 주례로서 성립되는 사회적 결혼이 혼배성사일수 없으나 성사의 정신이 강조되어 인생의 출발을 하는 이에게 타이른 알뜰한 한마디 한마디가 일생을 통해 침침칠야의 횃불의 구실을 다할 것을 생각할 때 흐뭇하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