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NC】 「잉그란드」와 「웨일스」의 주교들은 「영국」의 「개혁」 당시 순교한 40위 복자들의 시성신청을 공식으로 제출할 것이다. 이 순교자들 중에는 「영국」 교회사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있다. <에드먼드 캄피온>, 시인 <로버트 사우웰> 신자들 가정으로 사제의 은신처를 정교하게 지으려고 노력하던 <니코라스 오웬> 등이다. 「웨스트민스터」의 <고드루레이> 추기경은 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라의 가톨릭신자들의 드러난 소원에 호응해서 취해진 이번 일은 이 순교자들이 옹호코저 했던 그 이상에 대해서 높아가는 감탄을 보이는 다른 교파들의 공감(共感)을 살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규범과 속세의 유물론 사상간에 갈등이 있는 시대에 교회 당국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따르려고 애쓰는 자들에게 감명을 주는 실예(實例)가 되는 사제와 남녀 평신도 순교자의 무리에 대한 주의를 끌고자 한다.』
40위 중 평신사(平信士) 4위 평신녀(平信女) 3위, 「예수회」 수사 1위 그리고 「개혁자」들의 교의(敎義)와 투쟁하기 위한 방법으로 「트렌트」공의회서 세운 신학교에서 양성된 『신학교사제들』이 14위, 「예수회」 사제 8위, 「카르투시아」회원 3위, 「베네딕트」 회원 3위, 「프란씨그코」 회원 2위, 「아우구스틴」 회원과 「부리지트」 회원이 각 1위, 「영국 교회」의 최고 영수로서의 「헨리 8세」 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거부했기 때문에 1535년 5월 4일에 제1차로 처형당한 「카르투시아」회원인 <죤 호우톤>과 <아우구스틴 웨브스터>와 <로버트 로우렌스> 긜고 「부리지트」 회원 <리챠드 레이놀쓰> 박사이었다.
40위중 최후에 죽은 <데이비스 루이>는 그의 「교황주의 음모」를 발견한 <티투스 오오쓰>가 뒤흔들어 일으켰던 「반가톨릭」 폭풍우 당시인 1679년에 처형된 「웨일스」 출신 「예수회」원 사제 이었다.
<오오쓰>는 퇴학당한 신학생 프로테스탄트 정부의 영수인 <찰레스 2세> 왕을 거역하는 『무서운 음모의 공모자』를 발견했다고 정부당국에 고발했었다. 「스코트」 출신 예수회원 <죤 오긴비> 복자는 1681년에 처형되었는데 그들이 아마 「영국」의 「개혁」 때문에 공식으로 순교한 최후일 것이다. 그들은 「스코트」와 「애란」의 주교들이 시복을 신청할 것이다.
「영국」에서 「개혁」 당시의 316위 순교들 중에 2위만이 시성되었는데 곧 <죤 휫셔> 성인과 <토마스 모어> 성인이다. 198위가 시복되었고 나머지는 「존자」(尊者)로 선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