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예수께서 『나 진실히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내 이름을 의지하여 성부께 무엇을 구하면 너희게 주시리라. 너희가 지금까지 내 이름을 의지하여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니 구하라 곧 받을 것이니라』(요왕 16, 23-24)고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으로써 우리에게 기구하기를 명하시는 동시에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할 것과 그렇게 하지않는 자를 책하셨읍니다. <바오로> 종도의 말씀과 같이 천주와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계자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중개자는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 영원히 인간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구속사업과 사제직은 영원히 존속됩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성부 우편에 좌정하시고, 이미 이룩하신 구속의 희생을 끊임없이 천주 성부께 봉헌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예절과 기도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단독히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Per Eesum Christum, Dominum Nostrum) 행동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구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우리 가톨릭 신자는 보통으로 올바른 기도정신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신공책을 사용하고 있으니 별로 틀리는 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마땅히 항상 기구하고 그치지 말라』고 명하실뿐 아니라 예수의 일생은 기도생활이었읍니다. 기구 중에 밤을 새우셨고(루가 6, 12) 고요한 산이나 뜰에 가셔서 홀로 기구하셨읍니다. (루가 5,16).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실지 표양으로써 기도의 필요성을 만대에 가르치고자 하셨읍니다. 기구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절대 필요합니다. 구가히자 않는 자는 구령못합니다. 기도가 이같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기구하기만 하면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기구하여 기구의 참다운 효과를 얻으려고 하면 기구를 잘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구를 효과있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주일까지 계속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기구는 겸손되히 하여야만 효과를 얻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께서는 바리세이와 아전 두 사람의 기구하는 비유로써 똑똑히 가르쳐 주셨읍니다. 교만하게 구설하는 거지에게 어떤 사람이 동정하겠읍니까. 천주께서도 교만한 자의 기구는 물리치시고, 오직 겸손한 자의 기구만을 들어주십니다. <야고버> 종도께서도 『천주께서는 거만한 자를 배척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성총을 주시느니라』고 하셨읍니다.
둘째. 기구는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다하여야만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하는 기구를 어지신 천주께서 안들어 주실이가 만무합니다. 이와 반대로 정성없는 기구는 소용없는 기구입니다. 여기서 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것이니 하나는 내적 정성이니 즉 신공바칠 때에 모든 분심잡념을 물리치고 정성된 마음을 온전히 천주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외적 정성이니 즉 신공할 때에 경건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앉아서 한눈을 팔면서 하는 기구가 정선된 기구가 될 수는 없읍니다. 이 외적 경건한 태도는 내적 정성을 돕는 까닭에 경시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
金成煥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