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가아나 NC】 「백의(白衣)신부전교회」가 35년전에 「가아나」의 북방으로 들어간 것이 장래의 남(男) 무당이 「와」의 주교로 축성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 새 주교 - 지난 5월 8일에 「성 베드루」 대성전에서 <요안 23세> 교황성하가 축성하신 14위의 주교의 한 분 - 는 「서(西)아프리카」의 「다가티」족의 <베드루 데리>이다. 1925년 그가 10세때에 「쎄모파레」마을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었다. <베드루>는 그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남무당의 지위에 있는 자기 삼촌을 필연적으로 계승하려고 벌써 조수가 될만큼 공부를 했었다. 그때 변환기가 왔다. <베드루>의 부친 <포레쿤>이 25마일 밖에 있는 교회에서 백인들이 그네들의 천주를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자기들의 전통적인 귀신들 대신에 사람이 왜 천주를 공경하는가 들어보려고 25마일을 걸었다. 그가 들은 말에 감명을 받고 다음 주간에도 나이가 든 아들들을 데리고 그 「백의 신부 전교회」를 거듭 방문했다. 3부자는 문답공부를 위해서 여러주간을 25마을을 걸어서 왕복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이 그 3부자가 배운 새 천주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그중 몇사람이 교회에 갔었다. 특별히 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 무당의 호소가 효험이 없었다. 「백의 신부」들이 그 「다가티스」사람들에게 『오직 천주께서 비를 내리실 수 있을 따름이라』고 일러주었다. 그 동네 사람들이 <포레쿤>이 기도하는 것을 지키고 있었다. 배가 내렸다. 그러나 마을 어른들이 <포레쿤>을 재판해서 투옥하려고 법정에 호출함으로써 <포레쿤>이 감화를 막았다. 또 날이 가물게 되자 그리스도 신자를 다시는 안가두겠다는 추장의 약속과 함께 그가 석방되었다. <베드루>를 「나브롱고」에 있는 「백의 신부 전교회」의 학교에 보냈다. 그는 문답을 배웠고 자기 부친의 심부름을 했다가 1932년 성찬전야에 다른 12인의 「다가티스」인들과 함께 영세했다. 이 사람들이 가톨리시즘을 포섭한 첫번째의 「다가티스」인들이었다.
1935년에 <베드루 데리> 「가아나」북부의 「타말레」소신학교에 입학했다. 7년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것도 「다가티」족으로서 역시 첫번째의 사제이었다. 1957년까지 그는 교구의 학교일을 도우면서 일반적인 교구의 사무에 시간을 보냈다. 1958년에 「베르기」의 「루방」대학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후에 「안티고니슈」의 「노바 스코씨아」에 가서 연구했다. 이 기간에 그는 「카나다」와 「미국」의 각지를 여러달 동안 여행하면서 교육제도와 농업기술을 연구한 다음 「가아나」에 돌아와서 자기 백성들을 도왔다. 금년 3월에 <요안> 교황께서 그를 주교로 임명하셨다. 오늘 그는 새로 설립된 「와」교구 4만명의 영적 지도자이다.
이것이 「백의 신부」가 「아프리카」인 성직자들에게 돌려준 제9의 교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