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정치
발행일1960-05-29 [제231호, 3면]
필자는 오지리 가톨릭노동조합의 지도신부다. 동조합은 지난 4월 2일과 2일 양일간 「잘쯔부릌」시에서 대회를 가지고 「가톨릭부흥운동과 정치」라는 문제를 토의했다. 이 원고는 의제(議題) 중의 1부로서 이 대회에서 <클로스터만> 신부가 연설한 「교회와 정치」라는 연제의 초록이다.
제1부 그리스도교적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일찌기 교회나 또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제마다 국가 또는 국가 조직의 권력제를 향하여 교회와 교회의 사명을 확실하게 구현시키기에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국민이 자유를 획득하고 동시에 민주주의적 정부형태가 가능하게 된 후부터는 구체적으로는 약 백년이래의 일이지만 국가의 정책이 그리스도교 제거(除去)로 나왔을 때 그것을 반대하는 작용을 주기위한 신자들의 조직적인 노력도 있었고 또 가톨릭 내지 그리스도교적 정책이란 이름으로 나섰을 때는 정치적인 가톨릭씨즘으로 규정을 받아 반대당으로부터 비방을 받았고 전체주의 국가로부터는 유혈의 결과를 초래한 이런 등속의 노력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정치를 간단하게 교회 정책과 동일시 할 수 없다. 교회정책이라고 하면 교회가 특정된 정치단체와의 관계를 조정함으로써 교회의 관심과 원리 특히 교회와 국가 상호간에 관계되는 문제들을 확실하게 하려는 교회의 노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마침내 정치적 협정 또는 어떤 협약방식을 수립하려는 노력에 도달한다.
항차 그리스도교적 정책이란 「로마로부터」 지배를 받는 어떤 국가정책이 아님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교회의 지도는 오히려 정치적인 지시에 대하여 더구나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당면했을 때가 아닌 이상 가톨릭 정치가들에 대하여도 권한이 없는 것이다. 가톨릭 정치가들은 이런 경우에 항상 일종의 독자성이 부여되어 왔거나 혹은 그들 스스로 이것을 전취해왔다.
그리스도교적 정책이 현대적인 방법으로써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질서를 가진 새로운 중세기를 이룩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황제 혹은 혹은 그리스도교국가, 또는 주권 같은 말하자면 다시 「지상에 천주의 나라」를 세우려는 그리스도교 정당에서 우선 주창으로 내세우고 있는 그러한 새로운 무엇을 제단(祭壇)과 밀접하게 결부시키려는 노력도 또한 전혀 헛된 시도(試圖)는 아니다. 이러한 「지상에 천주의 나라」가 가지는 문제점은 별도로 하고라도 이것은 역시 공상으로 보이고 또 다원적(多元的)인 사회에서는 진지한 그리스도교로 이끌어나가는 방법으로는 허용될 수 없는 태도로나 권력에만 맡겨왔던 것 같이 보인다.
그리스도교적 정책이라고 해서 일정한 형태와 가능성과 해결책을 가져 미리부터 확고부동하게 작성된 제도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그리스도교 정치가에게 임의로 적용시키는 제도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정치가가 이 정신을 선용할 수 있게 할 따름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교회가 미리 준비해 두고 있지 않으며 교회가 그런 것을 가질 권한도 없다. 「그리스도교의 정책」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다른 참된 여러정책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하나의 배려(背戾)인 것이다. 그러나 이 배려는 공식적인 형태 단체나 국가형태에 있어서는 그 표시를 항상 강력히 요구해온 자연법의 원칙에서 또 그리스도의 율법원칙에서 감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원칙을 살려나가게 하는 것이요 그 결과나 권리 혹은 단순히 순간적인 목적달성을 꾀하는 그런 등속의 것이 아니다.
물론 교회가 그리스도교 정치가가 교회정책을 고려에 넣어 여기에 전력을 다하여 협력하며 교회의 모든 권리와 관심이 보장되며 교회에 대하여 보담 자유롭고 보담 독립적인 생명권(生命權)과 활동권(活動圈)이 부여되고 보장되고 언제나 다시 투쟁할 수 있게 되기를 정당하게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교 정치가의 유일한 존재목적이 아니며 제1차적인 목적도 아니다. 적어도 평상시에는 이럴 필요가 없으나 명백히 문화투쟁의 시기가 왔을 때만은 앞장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적 논구(論究)의 출발은 결국 성경에 의거해야 하고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에서 나와야만 한다. 예수님은 스스로 정치적 권력과 자격을 행사하시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었다. 그의 사명은 순전히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이었고 천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음을 가르치고 천주님 대신에 인간을 성화하는데에 있었고 인간의 최후적인 곧 초자연적 문제해결에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사명은 그에에도 뚜렷하게 인류 개개인에만 직접으로 관련되었고 또한 바른 관계를 재조명하는데만 행해져 있는 것이다. 이 크고도 순수한 종교적 목표에 대하여 기타의 다른 모든 것 즉 세계, 시간적인 것, 문화, 예술, 과학, 경제 그리고 물론 정치도 다 간접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속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사회정책적 경제정책적 문화정책적 개혁을 그의 사명으로 논한 적도 없었고 그러한 개혁 안을 제시한 적도 없었다. 방법으로는, 예수님은 가난하게 그리고 기회주의적인 정권의 사형대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종의 모상으로 살았었다. 그는 또한 마귀에 대하여 그 제자와 베드루와 그리고 그의 심판관에 대하여 천주의 나라에 들어가는데에 정치적 권력사용을 거듭거듭 명확하게 거부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