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성모
발행일1961-05-07 [제277호, 4면]
봄이 오건 가을이 오건 나에게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추운 겨울 동안에 죽은 듯이 잠들고있던 산천의 초목들이 봄바람에 부디치어 모름지기 온 몸에 변화를 이르키기 시작하면 설레는 마음속에 청춘의 황금시대를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봄이되면 온 세상은 때때옷을 입고 다음 철을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듯 봄철은 뒷걸음질쳐 버리고 만다. 아마도 봄철은 모르고 사라지는 어린시절일지도 모른다.
봄철이 익어가면 온 세상은 때때옷을 벗고 새파랗게 청춘복으로 갈아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적막한 세계에 활기를 띠어준다. 이때가 오면 5월이 온다. 그리고 5월이 오면 온 세상이 일찌기 그리던 청춘시기가 되돌아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오면 무조건 즐겁다. 혹시 절량농부들에는 임시 고통이 되겠지만 이들이 굶주려 가며 뿌린 씨앗이 싹이 터서 새파랗게 자라나는 것을 보게되면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과 희망을 품게 된다. 사람은 어디를 가나 고통과 슬픔에 파묻혀 살게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도 참된 행복과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잘못 생기고 잘못난 사람도 잘생기고 잘난 사람을 그리며, 젊은 이들이나 늙은 이들이나 모두 청춘을 그리워 한다. 나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에서도 참된 것을 찾을 수 있을 때 우리 인생에게는 즐거움이 오는 줄 생각된다.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나 허위와 겉꾸밈이 많다. 없어도 있는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고 글짜 그대로 겉과 속이 아주 다르다. 오월에 나타나는 산천의 초목들은 한낱의 겉꾸밈도 없이 생긴 그대로 솔직하게 나타나 자기의 실력대로 대자연을 꾸며주지 않는가? 이것은 내가 순진하게 나타나는 초목들의 신비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오월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둘째 이유는 오월이 녹음의 청춘복을 입은 대자연이 그 순진성에 있어서 우리 인간에게 산 교훈을 주는 동시에, 자연계와 초자연계에 있어서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온갖 미덕으로 꾸며진 걸작인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성총을 가득히 입은 피조물이요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덕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인간으로서 천주의 모친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와 같이 모든 덕으로 천주의 모친이며, 천상 천하의 모후가 되고 있는 것보다도 그녀의 순진한 겸덕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녀는 그와같이 천주의 특별한 은혜로 높은 지위를 차지했으니 우리가 천주 다음에 높은 공경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우리가 본받을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겉꾸밈과 허세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녀의 오월에 녹음으로 장식된 대자연과 같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는 겸손의 덕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남보다 조금만 높은 자리를 차지해도 남을 멸시하고 흥청거리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 일수이다. 성모 마리아는 그와같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지위를 획득하여 천주의 모친이 되기까지 하면서도 인간으로서 가장 낮은 사람과 같이 가난하고 평범하고 겸손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녀는 전능전지한 예수를 아들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그의 「빽」을 믿고 남을 억누르거나 멸시하지 아니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곤란을 당할 때에는 겸손하게 예수께 청하여 도와 주었다. 「가나」촌의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져 손님을 집에 잔뜩 가진 집주인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것을 본 마리아는 군중에게 전능한 자기의 「빽」에 대하여 한마디 빈정거리는 말도 없이 묵묵히 아들 예수께 그 상황을 전할 뿐이었다. 『저들에게 술이 떨어졌다』고.
요약해서 마리아의 생애는 평범하고 순박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이러한 단순한 삶 속에서 참됨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모는 순박한 자들의 모후이시다.
오월은 성모의 달! 푸른 하늘, 화창한 봄 날씨에 녹음이 우거진 대자연 속에서 영원한 청춘의 모후 성모의 달 오월의 태양빛을 담뿍 받아서 순박하게 자라나는 산천의 초목들과 함께 나의 청춘을 즐기며 새파랗게 맘껏 자라나리라. 그리하여 나의 청춘을 영원히 즐겁게 해주는 천주께로 나아가리라.
(筆者 가톨릭 大學 講師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