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수승천」축일인 5월 26일 상오10시 서울 혜화동본당 신축성당의 축성식이 <바오로> 노(盧基南) 주교 집전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철근 「콩크리트」와 화강석(花崗石)으로 아름답게 지어진 이 최신식 스타일의 새 성당은 이날 만국기와 꽃다발과 화환으로 장식되었으며 외국의 원조없이 순전히 신자들의 정성으로 이룩된 이 성당의 축성식에 참례하려는 수많은 교우들은 아침부터 성당의 마당을 메우고 있었다.
「아스뻴 제스메」성가와 함께 노주교의 성수산수 예절과 부제 및 대신학생들의 성인인품도문 합송으로 시작된 축성식은 먼저 건물의 외부 축별에 이어 성직자의 뒤를 따라 모든 교우들이 새 성당으로 입당하였던 것이며 축성예절에 이어 주교가 봉헌하는 미사가 거행되었다.
미사에 이어서 낙성식이 거행되었는데 이 식은 본당회장 남(南진治)씨의 개회선언과 동본당 합창단의 「아베 마리아」성가 합창으로 시작되어 전(前) 부통령 <요안> 장(張勉) 박사가 신축기성회장으로서 모든 교우들과 본당 회장들에게 감사한다는 개회사가 있었고 노주교, <바오로> 신(申仁植) 부주교 <금구> 장(張今龜) 본당신부 그리고 옛날본당 신부이었던 <삐에르 성거>(成=현재 論山본당) 신부 및 기성회장에게 꽃다발이 증정되었으며 이어서 유공자에게 드리는 감사장 및 상품이 증정되었는데 먼저 본당신부께 드리고 설계자 이희태씨 공사감독 심호섭씨 조각가 김세중씨 토목책임 유광수씨 벽돌 엄덕규씨 석공 서태달씨 물자보급 김상순씨 물자보급 이공남씨 전기가설 김옥윤씨 등의 순서로 서울교구 재단이사장 노 주교 및 이 성당 기성회장 장면 박사에 의하여 수여되었다.
이어서 노 주교의 찬사가 있었고 내빈으로는 장(張基永) 서울특별시장의 축사를 위시하여 성직자를 대표하여 성(成) 신부 교우를 대표해서는 미아리본당 회장 남(南相喆)씨의 축사가 있었으며 끝으로 본당신부의 인사가 있었는데 <금구> 장신부는 『그야말로 눈물겨웁도록 열성적인 성금에 대하여 고맙다느니보담 차라리 가슴 아프다』고 목메인 음성의 말씀에 모두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던 것이다.
이 성당의 신축계획은 이미 6년전에 시작된 것으로서 당시의 본당주임이었던 <누까> 정(鄭元鎭) 신부와 여러 회장들이 교우들의 앞장을 서서 오직 신자들의 열성과 정성에 호소하여 이룩된 것인데 그 몇가지 눈물겨운 이야기의 예를들면 자기가 경영하는 사업에 지장을 초래해가면서 5백여만환의 거액을 봉헌한 특지가가 있는가 하면 외인을 장부로 모시고 돈을 타낼길 없어 다만 찬값을 절약하고 옷감같은 것을 검소한 국산품을 사용하므로 절약하여 백여만환을 봉헌한 부인, 어린애 손목에 끼어준 돐잔치의 금가락지까지 빼어바친 교우, 불구의 몸으로서의 동정을 받아가며 움속에 사는 할머니가 끼니를 굶어가며 절약한 돈 몇천환…… 이렇게 모여진 성금(誠金)이
▲1954년도에 1,015,050환
▲1955년에 97,000환
▲1956년에 1,322,638환
▲1957년에 10,000,915환
▲1958년에 19,001,495환
▲1959년에 24,125,590환
▲1960년에 4,242,560환으로
총계 5천9백7십여만환이 되는데 이밖에 교구본부 5백만환과 본당밖 교우아닌 여러 은인들로부터 2백여만환의 찬조가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이런 것을 몰랐던들 가슴이 아프지 않겠다』고 말한 본당 장신부의 말은 거짓없는 솔직한 고백으로서 듣는 이들의 가슴을 찌른바 있었으며 『새 성당을 짓는동안 우리는 좋은 묵상재료를 보았다. 마당에 흩어진 돌 자갈 벽돌이 세멘트의 힘으로 서로 붙고 또 붙어 공중에 높이 솟은 성당 특히 종탑을 이루었다. 우리도 애덕으로서 뭉친다면 저 길바닥에 오고가는 모든 외교인들도 우리와 함께 뭉쳐 하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애덕의 실천에 전심하자』고 당부하였던 것이다.
이 혜화동본당은 1920년 독일 「성오딜리안」의 「성베네딕트」수도원이 지금 대신학교 자리에 세워지자 그후 1927년 10월 7일 명동본당에서 분활하여 새본당이 되어 프랑스인 <지> 신부가 초대 봉당신부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제8대 신부를 뫼시었는데 본당설립 34년동안에 6천3백6십9명의 영세자를 내었다.
1940년에는 관하에서 신자 862명을 떼어 「제기동」본당을 분활시켰고 1945년에는 미아동본당을 1955년엔 「돈암동」본당으로 945명의 신자를 갈라주고 현재 교우수 4천이다.
한편 본당신축의 경과는 1954년 3월 1일 기성회 발족 1955년 5월에 착공했는데 건축설졔는 이회태 건축연구소에서 시공은 기성회 직영으로 하였다.
1958년 6월에 정초식 1958년 12월 건물외곽 및 천정준공 작년 성탄절 미사를 새 선물에서 드림으로써 그후 주일날만 이 새집을 사용해왔으며 1960년 「예수승천」축일에 건평 225평 연건평 525평 총공사비 7천2백만환 되는 이 새성 당의 축성과 헌당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이날 식이 끝난후 성대한 파티가 있었으며 하오3시에는 2백여명에 대한 견진성사가 새성전에서 노 주교 집전으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