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鎭海(진해)본당
남교우 많은 것이 특징
앞으론 문화행사와 사회사업에 주력
「액숀」은 모두 「레지오」조직으로
발행일1960-06-05 [제232호, 4면]
1926년 그당시 마산본당 주임이었던 프랑스인 <뒬르 베르몽>(曉) 신부가 조그마한 집을 얻어 공소를 마련하여 전교의 터를 잡아 복음의 씨가 심어진 이 고장은 그후 마산본당의 공소로서 약20년 지나오다가 1946년 3월에 본방인(本邦人) <아릭수> 김(金慶佑) 신부가 초대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안국사(安國寺)』라는 일본인들의 절을 불하(拂下)받아 성당으로 개조하여 『성모 무염시태』를 주보로 뫼시는 새본당을 설치한 것이다.
<베드루> 장(將炳補) <스테파노> 신(申相祚) <갸오로> 김(金東漢) 등 여러 신부님들이 주임으로 이 본당을 거쳐간 다음 1956년 <요셉> 장(張炳華) 신부의 재임시에 교세 발전에 따라 성당이 협소하므로 성당의 신축공사를 시작한 것인데 장 신부는 이 공사의 완성을 못본채 부산으로 전임되시고 그뒤 주임사제로 오신 <클레멘스> 김(金忠務) 신부가 1957년 6월에 부임한 한달후인 7월 23일에 건평 1백60평 되는 모던스타일의 현 『예수성심』성당의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교우수는 시내에만 영세자 3천6백명에 예비자 4백명이 있으며 이외에도 8개처의 공소가 있어 신자수의 비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며 이러한 활발한 교세발전의 이면에는 「레지오 마리에」 단원들의 활동이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 본당산하에는 청년회가 부인회다 하는 등 여러 단체가 있었지만 「레지오 마리에」조직의 확장과 활발한 활동에 따라 학생회 하나만이 남고 다른 단체들은 해체되어 버리고 말아 지금은 모든 가톨릭액숀이 「쁘레시디움」을 통해서만 일하고 있는 상태로서 『그리스당의 도움』꾸리아 산하에는 성인과 미성년을 합한 21개 「쁘레시디움」이 있어 본당신부님의 명령 일하에 기민하게 전교활동에 동원되고 있다.
이 고장은 군항(軍港)인 관계상 군인(陸·海·空)을 포함한 군인가족들이 많으므로 전교에 있어서의 대상자도 중류 이상의 지식인이 많았는데 자유당 정권이 가톨릭을 무조건 야당(野黨)으로 몰아 박해를 가하던 때에는 외부의 압력이 너무 심해서 교회활동도 대내적인 소극적 활동밖에 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열한명이나 있는 군종목사들 가운데서 가톨릭군종사제로서는 혼자 분투하시는 <바오로> 김(金銀植) 신부님은 이 본당을 위해서도 좋은 보좌(補佐) 신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군대내에서도 「레지오 마리에」 조직을 조급시켜 매우 큰 성과를 거두고 있어 이로인해 본당의 전교활동에도 기여하는바가 크다 한다.
이 본당의 특징으로서는 다른본당과는 달리 남교우가 여교우보다 수가 많은 것이며 미사때에는 교우 전체가 합송미사경문으로 사제와 함께 예절에 직접 참가하고 있다는 것은 실감이 나도록 신심열을 북돋아주고 있다.
교회에서 경영하고 있는 사업체로서는 본당창설 직후부터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는 「성심유치원」이 있어 외교인들이 그 자녀교육을 통하여 교회와 접근하는 길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교우와 일반 외교인을 위해 종합적인 종교강의(교리반) 시간이 매일 저녁 7시부터 실시되고 있어 다대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소속공소 8개초를 매주일마다 일일이 순방하고 계시는 본당신부님은 앞으로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앞으로는 문화행사와 그외의 여러가지 일을 외부적인 행사로서 많이 가지려는데 이런 일을 하자면 자연 넓은 강당이 있어야 하르모 약 천명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센터를 조속한 시일내에 건립하도록 노력하겠으며 가톨릭문화전교에 더욱 힘써보겠읍니다. 그리고 얼마전가지도 있었던 「성모자선의원」을 다른병원들의 시설에 뒤떨어져 없애버렸는데 이것도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좀 더 완전한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써 새로 일으켜 사회사업에도 힘써볼 작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