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바의 悲劇
서반구에서 유일한 공산 섬 나라인 「큐바」에서 전번 실패한 반공 의거가 휩쓸던 3일간, 투옥되었던 두 분의 주교가 석방되었으나 연금 중에 있으며 아직 투옥 중인 신부는 부지기수다. 성당과 교회 학교는 민병대원의 감시하에 있고 출입하는 교우들이 번번히 검색을 당한다. 「갈멜」 수녀들이 봉쇄를 쫓겨나 평복을 입었다. 전번 의거에 참가한 신부 두 분이 전후하여 색출되었다. 날마다 총살형이 집행되고 있다. 교우들의 체포가 언제 그칠는지 모른다.
그러는 반면에 「멕시코」 「베네수엘라」 「코롬비아」 제국의 정부는 무고한 국민의 총살을 중지아니하면 「큐바」와 국교를 단절하리라고 하며 대학생들은 「반대학전선」(反共大學戰線)을 조직했다.
「칠리」 「훈두라스」 「엘 살바돌」 「니카라구아」 「과테마라」 「하이티」 「파라과이」 「도미니코」 제국은 반공 「데모」가 일어난 지 몇시간 후에 「큐바」와 국교를 단절했다. 「코롬비아」에서 「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 문명을 방위하라는 노동자들의 「데모」가 있었다.
「코스타 리카」의 국회에서 「카스트로」를 지지하자는 어느 진보적 의원의 제안이 「그리스도교 부인회」의 운동의 힘으로 배척되었다.
人民裁判에 울고 있는 라오스
「영국」과 「소련」 간에 정전이 결정된 「라오스」의 50처 본당 중 20처 본당이 공산군의 점령 지역에 들어갔다. 공산군의 점령 지역에 8처의 본당에서 신부가 추방당했다. 자기들의 군대를 공산군이라고 부르기를 지방민들에게 엄금하는 <과테르 라오>는 일찌기 1959년의 성탄절에 <듀브루> 신부를 살해하였고 작년에는 <보르자기> 신부를 납치했다. 그의 군대가 1959년에 「베트민」으로 이동하여 재훈련을 받고 작년 8월 내지 9월에 국내로 다시 들어왔는데 그들의 점령지역에서는 어디서나 언제나 「중공」식의 참혹한 「인민재판」이 끊임없다.
헝가리 그 後
「항가리」 의거가 깨어진 것은 「쏘련」의 「탱크」 때문이었으나 「큐바」의 반공 의거가 실패한 것은 미리 들어가 있었던 「폴란드」인 및 「첵코」인 공산당원들이 조종하는 역시 「쏘련」 제「탕크」였다. 자칭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파테르 라오>가 자기 조국의 적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쏘련」이 공중수송한 「쏘련」 제 무기의 덕분이었다.
無意識 中 공산주의에 끌린다
그러한 눈에 보이는 형상만으로 공산세력의 움직임을 판단하려는 것이 특히 우리나라 반공 진영의 기본적 약점이다. 직_적 정치가들이 흔히 「쏘련」이니 「북한」이니 말하면서 「쏘련」과 「북한」을 그만큼 굳세게 조직하고 현명하게 활동시킨 「공산주의」라는 정신을 그 원칙에서 당연히 나오는 그들의 방법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우선 『공산주의는 비공산주의자들의 손으로 건설되어야 하느니라』는 <레닌>의 훈계를 상기하면서 우리 신변에서 나날이 치열해 가는 젊은 비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자! 얼마나 많은 그들이 무의식 중에 공산주의를 건설하고 있는가?
「막미란」 發言 공산주의자들이 神·生命을 알 때는
○ 「영국」의 「막미란」 수상은 「텔레비」를 통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소탄이 양대진영을 파괴하여도 반공투쟁을 종식시킬 수 없고 다만 공산주의자들이 생명의 의의를 스스로 묻게 되는데에 반공 투쟁이 종식될 것이다. 「빨갱이」들이 인생의 목적, 죄악의 의의, 신에 대하여 의문을 일으킬 때까지 버티자. 공산주의 사회에서 장차 그러한 의문이 생길 것이며 나는 지금도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인생의 목적이 생산에만 있다면 그것은 곤충세계에서 가장 잘 해결되고 있다-벌을 보라. 벌들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 또 한 가지 약점은 누가 와서 저희들의 꿀을 뺐을까 하는 걱정이다. 바라는 것은 가장 가능한 한 광범위한 생활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균형된 생산제도다』.
「영국」인 정치가의 말로서는 근래에 듣지 못하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