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30) 수사 한 사람 반(半)
발행일1961-05-14 [제278호, 4면]
「성 요셉」 수녀원이 창립된지 5년째 여러날 동안 <데레사>가 자기 독암자(獨菴子)에서
『나같은 연약한 여성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한탄하고 있을 때 어느날 저녁에 오 주께서 나타나사 극히 인자로운 얼굴을 보이시면서 그를 위로하셨다.
『딸아 조금 기다려라. 네가 큰 일을 보리니……』
당시 <필립 2세>왕이 자기 치하(治下)에서 수도원 생활이 전반적으로 개혁되기를 바라 「갈멜산 성모회」의 총장 <루베오> 신부를 초청했다. 그 총장이 「아빌라」에 머무는 동안 자기 「회」의 옛날엄률(嚴律) 이 복고(復古)된 사실을 「성요셉」수녀원에서 발견하고 놀랐다.
<루베오> 총장은 <데레사>에게 「카스틸랴」의 전역(全域)에 걸쳐 개혁된 수녀원을 창립하는 권한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엄률갈멜」의 수사원(修士院)을 우선 두군데 창립하라는 명을 주었다.
돈 한푼 없이 집도 없이 수사(修士)도 없이 온 「카스틸랴」를 「갈멜」수도원(修道院)으로 채우는 사명을 띠게된 <예수의 데레사>는 그야말로 『큰 일』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알바레스> 신부의 동의를 얻어 그는 「메디나 델 오캄포」를 제1착의 후보지로 정했다.
<데레사>는 「성 요셉」에서 2명, 「강신」에서 4명, 전부 6명의 수녀를 골랐다. 이번의 작별은 특히 마음이 앞았다. 그는 남기고 가는 자기 딸들에게 마치 출정하는 장수(將帥)처럼 말했다.
『강용(强勇)한 장군처럼 천주께서 죽기를 원하셨으니 우리는 그 어른을 따라가자. 그 어른을 죽인 우리가…… 잠들지 마라. 잠들지 마라… 이 어떠한 강복받은 전쟁인가! 하나라도 다라나지 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전진하신다. 이 깃발을 따르자!』
기도가 전쟁, 침묵이 요새(要塞), 극기가 전술이다. 천주 안에 있는 영혼은 진격중의 군대와 같이 강하다. 검은 「베일」을 쓰고 침묵하고 움직이지 않는 여성들이 생각 하나와 희생 하나로 『영웅적 행동』을 함으로써 온세계의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동 키호테」의 이상주의와 「산초 판싸」의 현실주의를 한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마음으로 가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완전히 미쳤음을 스스로 자랑했다.
『성성(聖性)이 우울(憂鬱)로부터 일어나지 않음을 명심하라.』
이제 그의 극고도의 기도상태가 무의식 중에 그의 행동을 무장시켰다. 그는 정신이 자유자재하여 자기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는 자신의 주인이었다. 나이가 52세였으나 아직도 그는 아름다웠고 명랑했고 생기발랄했으며 어느때 보다 더 웅변이었고 아무도 당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의 일행이 3대의 나마차(나馬車)를 나눠 타고 「아빌라」를 출발한 것이 1567년 8월13일 새벽이었다.
자기가 탄생하던 때, <로드리고> 오라비와 함께 순교길을 떠나던 때 남동생 <안토니오>를 다리고 「강신」으로 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때도 역시 온 「아빌라」 성내의 모든 성당 종이 삼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기 수녀들을 거느리고 가는 것이다. 삐걱 거리는 바퀴소리가 거리의 잠을 깨웠다. 영도사(零導師) <후리안> 신부와 남복(男僕)들은 나귀를 타고 뒤딸았다. 울뚝불뚝한 악도로를 뒷둥거리며 굴으는 나마차의 덜커덕거림에 종일 찌들려 지친 그들이 「메디나 델 캄포」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그곳의 「완율 간별」회원 <안토니오 헤레디아> 수사가 <데레사>의 새 수녀원이 될 집을 세를 주고 얻어 놓았으나 그 이웃에 있는 「아우구스틴」 수사원에서 역시 보시(布施) 문제를 적극 방해했기 때문에 당장에 입택(入宅)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들은 소리없이 들어가기 위하여 나마차를 성문 밖에(市外) 버리고 「미사」짐을 나누어 들고 밤거리를 걸었다. 무사히 그 집 앞에 왔으나 대문은 잠겨있었다. 그들은 집지기를 황급히 깨워 문을 열고 막 들어 서려니까 황소 여섯 마리가 그 문 앞을 스쳐 미친듯이 달리면서 지나갔다. 그것은 이튿날 투장에 나갈 투우들이었다. 그들은 놀란 가슴에 손은 얹고 천주께 감사했다.
동틀 때가 가까웠다. 손을 나누어 소제를 서둘러 마치고 종을 달았다. 잠든 총장서리를 깨워다가 주교의 허가를 확인시켰다. 제대가 꾸며졌으나 조명(照明)이라고는 촛불 하나 밖에 없었다. 날이 밝아질 무렵에 그들은 기쁨이 솟구치는데로 「미사」종을 한 번 또 한 번 연달아 쳤다. 모여든 이웃 사람들이 밤사이에 솟은 수녀원을 보고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날이 완전히 밝아서 보니 벽이 무너져가며 제대 위에 현시될 성체가 시끄러운 행길을 향해 있지 않는가?
수녀원이 정식으로 창립되어 <데레사>는 어느 때보다 기뻤으나 그날 밤을 지존 앞에 황송가 걱정 중에 철야조배로 세웠다. 다음날 주의 감도(感導)를 받은 <불라스>라는 상인이 성당용으로 자기 집의 한 층(層)을 전부 <데레사>에게 임시로 제공하여 성당을 그곳으로 옮기고 그 낡은 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성 안나」 수사원에서 「완율」수사들이 자주 그 일터로 자주 <데레사>를 보러 왔다. 그중에서 원장 수사인 <에레디아>신부가 제일 찾았다. 그 수사는 키가 크고 미목(眉目)이 수려(秀麗)한 「살라망카」대학 출신으로 연구에 골몰했다. 신학자인 그는 신비하면서도 이성(理性)에 합치되는 <데레사>의 기도에 관한 이야기에 탄복했다.
두 군데의 「임율 수사원」을 세우라는 <루베오> 총장의 허가장을 본 그는 출생이래 안일한 생활 57년만에 자기가 첫 번째의 「엄율」수사가 되겠다고 다집했다.
며칠 후에 <후안 데 산마티아스>라는 24세의 청년수사가 찾아와서 「엄율」수사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고백했다. 그는 「성 안나」수사원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다. <데레사>는 그의 키가 다섯자도 못 되는데 놀랐다.
『딸들아 나는 오늘 수사 한 분과 또 수사 반 분을 만났더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