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談] 교우들의 6·25
民主革命(민주혁명의 바탕은 6·25때 마련된 것
발행일1960-06-26 [제235호, 3면]
6·25 「열돐」을 맞이했다. 붉은 탱크가 미아리고개를 넘어왔을 때 그때까지도 우리는 38선이 있으니 설마 무력기습(武力奇襲)을 세계 여론 앞에 그렇게 끝장을 볼 때까지 감행할 수야 있으랴는 생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낙동강까지의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서 공산마(魔)의 그림자를 목격하고서야 어떤 희생을 지불하고서도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죽음으로써 각오하게 되었던 것이라 할까.
1950년 6월 25일 그날 아침의 뼈저린 기억을 우리는 그냥 카렌다를 한장 뒤지듯 맞이할 수는 없다. 우리 교우들은 그때 참으로 영혼의 위협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편집회의 여담(餘談)으로 주고받은 몇마디를 엮어서 대담(對談)식으로 적어 어언 6·25 1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와 역사적인 제2공화국의 탄생하에서 더욱 새삼스러워지는 그때를 지상으로나마 풍겨보자는 뜻으로……
<文責在記者>
두더지 생활
金達湖 - 李先生님이 그때 톡톡이 당했지
李太載 - 말씀마십시오. 나는 꼭 수복될 때까지 땅두더지 생활을 햇는데, 땅속에 파고 들어가기 전에 아주 고해성사까지(笑聲) 받고서 길차림을 했읍니다. 그때 고해를 들어주시던 吳 신부님(미아리)은 수복 때 돌아가셨읍니다.
金 - 한강 남쪽서는 본당신부님을 모이세 성인처럼 모시고 장사열의 남하를 했지요.
李 - 그런때일수록 신부님을 중심으로 하게되는군요. 여교우들의 도움을 상당히 받았읍니다. 나보다 몇갑절 수고했고 우리같은 약골로선 입네도 못낼만한 교우들의 희생적 활동은 길이 기억되어야 할 줄 압니다.
金 - 순교하신 「번」 주교님은 사절로서 끝까지 성직자들을 격려하셨다고 하지않습니까.
正義의 據点
李 - 그런데 공산당의 「소피스티케이트」 어쨋든 줄곧 반복하는 선전에 교우들마저 넘어서고만 사례가 있읍니다. 그 지긋 지긋한 선전에 머리가 돌았다고 할까. 정의(正義)의 거점이 흔들려버린 그런 실례를 간과치 못할 것입니다.
金 - 평소에 여간 단련된 신심(信心)이 아니고서는 환경에 현혹될 수 있지요.
李 - 그런 것 제일 크게 느꼈읍니다.
核心을 찔러야
金 - 수복(收復)때 적십자사편으로 안동지구를 돌아본 일이 있읍니다 .빨강이들이 제대감실을 꿰뚫어 놓고 성상을 말짱 파괴해 놓았는데 나는 그때 그들은 적이면서 공격목표라 할까 그들의 적대(敵對)되는 장소를 파악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그들이 제대감실을 꿰뚫듯 우리도 그(공산주의의) 핵심을 때려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 봤읍니다.
李 - 그들에게 끌려갔을 때 무슨 말끝에 쏘련서 종교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당장 취조자를 바꾸고 점잖게 대하드군요. 그들의 훈련은 참 주도합디다. 난 그것을 이용해서 슬적했읍니다만(笑聲)
金 - 두더지 생활은 얼마나?
李 - 수복때까지 꼬박
金 - 「까다곰브」 그대로였군요.
反共樂觀된다
金 - 나는 이번 혁명에서 특히 학생들의 민주역량을 크게 평가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힘의 원천은 역시 6·25라는 것이 뒤받침이 아니냐 말하자면 그것의 역사적 확대이다. 이렇게도 생각되고 우리는 절대로 공산화되지 않는다는 자신을 얻었다고 하겠읍니다.
李 - 일본을 보세요. 학생들이 쏘련에 유리한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이 (美·日安保條約反對데모) 빨강이의 진상을 모르는 탓이거든요.
金 - 그런뜻으로 6·25의 사상적 의의(意義)는 크다고 하겠읍니다.
李 -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거짓 신자들의 출몰은 참 곤난했읍니다. 막상 천주를 모르는 빨강이들 보다 더 비겁하였읍니다.
단단한 信仰만 있으면…
金 - 그러니 확실한 신자 그 신앙이 파괴되지 않는 신자가 된다는 것이 요긴하겠읍니다.
李 - 그때 공산당과 신자의 양심으로서 정면충돌을 하느냐 혹은 숨을때까지는 숨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였읍니다.
金 - 피할때까지는 피해야지요.
李 - 그래서 말입니다. 순교의 면목을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읍니다. 베르기 있을때 「自然法」 시간에 옛날 순교자들의 유사 예를 들기에 6·25때 기억이 새롭드군요.
金 - 공소교우들의 그 단단한 신앙 베드루의 신앙이라 할까요. 그들의 존경할만한 정신은 풋내기들이 무조건 고대 숙여야 할 것인 줄 압니다. 이런책 저런 소리를 듣고 어렴풋이 아는 것 아니라 그들은 공과나 첨례표를 줄줄 외우고 있지 않아요. 그게 큰 힘인 것 같습니다.
李 - 내 체럼을 들어놓아서 나보다 더 수고한 분께 죄송한 생각입니다.
金 - 6·25는 참으로 이번 혁명에 있어 사상적 발판이었지요. 6·25가 없었다면 혁명의 양상(樣相)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李 -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