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기도의향은 기고만장(氣高萬丈)한 흉모(凶謀)와 허위에 가득찬 권모술책(權謀術策)에 대항할 것이며 또한 천주님의 원수들의 불신(不信)과 그 독재성(獨裁性)을 처부수기로 기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의향에서는 천주님의 원수들이 누구인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들을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골라내는데 있어서 착오가 없게하며 또 정치적인 것을 흘려내려가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친히 누구를 천주님의 원수들로 간주하셨는지 또 어떤 태도를 가르쳐 이 원수들의 소행으로 규정하시고 자기의 수난을 통해서 증명하셨는지를 알아봄이 유익하리라. 마침 여기 「유데아」의 지도자들과 천주님의 아버지이심에 대한 신앙적 대화 중에 중요한 구절이 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천주가 네 부친이면 너희가 과연 나를 사랑하리니 대저 나는 천주께로 조차 나서왔나니라……
그러나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나고 또 너희 아비의 원하는 것을 행코저 하는도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에 머물러있지 아니하였은즉…… 그는 거짓말장이요 거짓말의 아비로다』(요왕 8,42-44)하셨다. <바오로> 종도께서는 이 독특한 말씀을 가령 필립피 시민에게 보내는 서간같은데 풀이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원수되어 거닐으는자(그리스도 신자) 많으리라…… 지상의 것만을 탐하나니라』(필립피서 3,18-19)고 하셨던 것이다. 천주의 원수들은 이와같이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천하가 다 아는 무신론자들 가운데나 꼭 마찬가지로 교우들 가운데도 천주님의 원수들이 있다.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지 않고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곧 여기에 속하는 것이니 그들은 교회안에 실재로 졔시는 천주님보다 자기를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주의 원수들을 예수님은 사랑하셔서 사랑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참으시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진리가 유효하게 증명되게 하시는 것이다.
기도의향에서 지적한 천주님의 원수들 그 흉모와 그들의 권모술수와 천주를 대적(對敵)하는 모든 행동의 뿌리 그리고 그 불신 등을 들어 적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교우들로서 철저한 무신론자나 물질주의자들을 볼 때 또 계획적으로 교회를 압박하고 교우들로 하여금 그 신앙과 그들의 목자들에게 불충(不忠)하게 이용하는 무리들을 천주님의 원수들로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원수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적 진리를 지키기에 확고 부동하게 하는데는 무엇보다도 충성되이 인내한 가운데, 극기와 기도하는 가운데 그 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들이 하는 가장 불쾌한 모략간계(謀略奸計)는 우리를 속여 이 세상에 원수가 있겠는가 이국가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이 정당에는 없다, 이 경제체계에는 없다고 하는 것 등을 우리에게 믿게 하려는 곳에 그 간악한 흉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例)들은 바로 소위 가톨릭국가라고 자칭하는 나라에서 익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니 마치 모든 것을 교회를 위하고 교회에 순명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면서 천주의 원수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두각을 휘둘으며 사회적 불의(不義)에만 천주의 원수가 있는듯이 야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는 비단 가톨릭국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사조는 도처에서 그리스도신자들간에 전파되어 있다. 천주의 원수들의 교활한 흉모와 불신은 많은 교우들이 모르고 있는 동안에 실로 우리들 한가운데서도 그들의 우상숭배적인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편에 그리스도교적 진리를 공공연한 무신적 물질주의에 유효하게 대항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세상 모든 속된 생각에 대비할 수 있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덕행으로 생활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행동력으로 실천하는데 있어서 생각되는 것은 보담 더 자주 미사성제에 참례할 것이며 집회나 행렬에 더 많이 참석할 것, 교리지식을 더욱 깊게 할 것 등이다. 그외에도 그리스도교적 행동의 훈련을 위하여 서로 단결하고 거로 각오를 굳게한 단체행동에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가족, 이웃간, 직장동료간, 친구간 등, 이러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세속」일에만 골몰하고 사는 것과 얼마나 다르다는 것이 증명되도록 그리스도교적 진리를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며 살아야만 하겠다. 예수·그리스도 자신인 교회에서 우리가 받은 진리를 우리는 농촌에도 전해야 하겠고 공장 작업실에도 가져가야 하겠고 상점으로 사무실로 병원으로 대학으로 각각 몸에 지니고 가야만 하는 것이다. 성당에서 뿐만 아니라 날마다 우리가 일하려 가는 곳, 우리가 천주님의 원수를 만나는 그 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사랑안에서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