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토움=NC】 「누비아」지역의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로 소급되는 것을 포함한 수백처의 고적이 「아스완」댐의 건설로 말미암아 물속에 잠길 위협을 받고 있다. 이 땜은 「에집트」와 북부 「수단」에 걸쳐서 15-25마일의 넓이와 320마일 길이의 호수를 「누비아」라고 알려진 「나일」계곡에 이룩할 것이다.
오는 10년내로 호수의 물로 덮일 고적은 강생전 4천년까지 소급되는 것이었고 「누비아」의 그리스도교 시대이던 강생후 5백년부터 1천5백년까지 1천년간에 건설되었던 것이 있다.
성전에 의하면 「성 도마」 종도가 「에디오피아」에 전교하던 당시에 「누비아」의 일부가 그 판도이었다. 유명한 「모스렘」 지도자 <사예드알리 엘 미르가니>가 「누비아」의 어느 지대만은 맨발로 걸으면서 『위대한 그리스도교 종도가 이곳에 묻혀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누비아」의 개종은 「로마」의 <유스티니안>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시대(527-65)였다. 다만 황제는 가톨릭이었으나 황후는 「그리스도단성(單性)파」의 이단자였다. 황제가 파견한 가톨릭 사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황후가 보낸 「단성파」 사제 <유리아노>가 먼저 와서 「나일」계곡의 3국중 「누비아」국의 <실코> 왕과 전국민을 개종시켰다.
그다음 10년간에 <유스티니안>이 보낸 사제가 「누비아」의 남쪽에 있는 「마쿠라」국을 가톨릭국으로 개종시켰다.
569년에 「단성파」 주교 <롱기누스>가 이곳에 와서 「에집트」의 이단신전(神殿)을 교회로 개조했다.
「마쿠라」국의 가톨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롱기누스>는 「알와」국을 「단성파」로 개종시켰다. 현재의 「카르토움」시 근방의 「알와」국 수도 「소바」와 「청(靑)나일」과 「백(白)나일」의 교류점으로부터 200-300마일 상류까지 그리스도교가 뻗어졌다. 그 두 지류(支流)의 연안에는 아직도 그리스도교의 폐허가 남아있다.
「나일」계곡의 그리스도교가 최고봉에 달했을 때가 8세기 중엽이었으나 「알렉산드리아」 총주교좌의 장기간 공석(空席) 때문에 (637-731) 「마쿠라」의 가톨릭이 「단성파」의 주교의 지배를 받게되어 따라서 「단성파」로 개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