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NC】 한국주재 교황사절(使節) <에가노 리기 람베르띠니> 몽시뇰은 「도클레아」의 명의대주교로 승진되어 「레바논」주재 교황대사(大使)로 발령되었다. 그는 지난 4월에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로 전임된 <바오로 베르톨리> 대주교의 후임이 되는 것이다.
【서울】 이번 교황청의 인사이동 발령으로 「레바논」 주재 교황대사로 영전(榮轉)되는 <에가노 리기 람베르띠니> 교황사절은 오는 7월 26일 한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로오마」로 돌아갈 예정인데 이에 앞서 20일 하오 3시에 <허정>(許政) 국무총리(國務總理)를 공식으로 예방(禮訪)하였다.
한편 서울교구에서는 지난 17일 하오 5시부터 명동(明洞) 주교관에서 <람베르띠니> 대주교 송별(送別) 파아티를 개최하였는데, 이날 이 회합에 참석한 이는 외래손님으로는 주한 미국대사, 이탈리대사, 독일대사, 베트남대사, 프랑스공사관, 1등서기관 내외 및 중국대사관 참사관, 그리고 <요안> 장(張勉) 박사 내외분과 외무부차관(次官) 등이었으며 교회측으로는 <바오로> 노 주교를 비롯한 각 교구 대표 성직자 및 재경(在京) 성직자와 신자대표 약2백명이 참가한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던 것이다.
<람베르띠니> 대주교의 후임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발표가 없으나 「로오마」성좌(聖座)가 이번 주한교황사절의 갱질을 발표한 것은 4·19혁명 이후의 정세변동과 제2공화국 탄생에 깊은 관심과 기대를 표명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람베르띠니> 대주교는 1957년 12월 28일자로 영국주재 교황청사절관 참사로부터 제3대 주한교황사절로 임명되어 1958년 5월 14일 서울에 부임한 이래 2년 2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의 체한(滯韓)이었지만 <이승만> 독재정권의 가톨릭교회에 대한 음성적(陰性的) 탄압정책으로 외교(外交)사절로서 가장 거북한 위치에서 고충이 많았던 것이다.
1947년 8월 <파드릭 제임스 번> (方) 주교를 초대(初代) 사절로 임명함으로서 개시된 우리나라와 「로오마」 성청과의 외교관계 13년의 역사중 가장 임기(任期)가 짧았던 사절인 <람베르띠니> 대주교는 「이타리」 출신으로 1900년 「볼로나」에서 탄생하여 「볼로나」와 「로오마」에서 수학(修學) 1929년 사제위에 서품되어 약10년간 본당신부로서 사목(司牧)에 종사 1939년 「바티깐」 사무국에 근무하게되고 그후 교황청 국무성(國務省)의 관리로서 「이타리」 주재 교황대사관과 「프랑스」 주재 대사관의 사무관으로 근무하였으며 다시 「고스타리카」와 「베네젤라」 주재 교황사절관 사무책임자직을 거쳐 영국주재 교황사절관 참사관직을 역임한 후 ㅈ사절로 승진되어 한국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번 또 대사(大使)로 영전됨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진되셨는데 현 <요안> 23세 교황과는 성하께서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로 계실 <론깔리> 대주교 시절에 <람베르띠니> 신부는 그당시 대사관 사무관으로서 성하를 뫼시고 있었던 사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