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의향
예수 성심 공경을 현대인에 상응(相應)하는 방식에 따라 교회의 정신대로 실천하도록
현대의 생활 양식은 인간을 외향적(外向的)으로 만든다. 기계와 기술의 영향을 받는 생활일수록 내적(內的)생활에 방해가 되는 결과 불안감과 신경병 또는 단순한 고독감을 일으킨다. 인간이 구하는 것은 자기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참아주는 사람 자기를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까지 받는 사람과 더불어 개인적 접촉을 통하여 자기의 내적 고독감에서 구추로디는 일이다. 그러한 사람을 찾으려면 우리는 그저 성경 책을 펼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막다리나>를 그의 사랑 때문에 용서하셨고 <베드루>의 인간적 약점을 이해하시고 그를 교회의 반석이 되도록 강화(强化)하셨고, 독자를 잃은 어미에게 동정하셨고, 당신의 친구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곡읍(哭泣)하신 예수를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뵈옵고,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의 마음 안에 이씨는 천주의 사랑을 발견한다.
고적하거나 슬프거나 죄 중에 있거나 그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고해, 영성체, 묵상의 실천을 통하여 예수의 성심 앞으로 겸손히 나아가는 즉시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사 지니신 동정심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그 어른과 몸소 접촉함은 우리가 예수를 위안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처럼 많은 갖가지 공경에서 살고 또 인류를 위하신 그 어른의 구속 사랑 안에 사는 전 인류를 위하신, 그리고 전 세계를 위하신 그 어른에게 참여할 따름이다.
예수 성심 공경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보이셨고 또 보이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이웃에 대하여 그와 동일한 인간적 동정심을 보임으로써 우리 마음을 채우는 이외에 다른 목적이외다.
■ 전교의향
모든 그리스도교가 가톨릭 교사의 교육을 받도록
가ㅓ톨릭 학교의 주 목적은 그 학교에 다니는 가톨릭 학생들을 가톨릭 환경으로써 가톨릭적으로 교육하고 비가톨릭학생들은 건전한 도덕으로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다. 학교라 함은 성년(成年)이 미성년에게 학문상 지식을 공급하는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인 교육자들이 미래의 성년남녀(成年男女)가 가져야 할 사상과 인격과 도덕을 함양하고 규범하는 장소이다. 특히 가톨릭 학교라 하면 교회와 그 교의에 관하여 사회에 현행(現行)하는 그릇되고 거짓된 관념을 배척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 가톨릭 학교는 교회와 비가톨릭 사회 사이에 접촉을 마련하는 장소도 된다.
<비오> 12세 교황께서 일찌기 말하시기를 『교사는 그 학교의 혼(魂)이다. 그것이 교회가 학교 자체와 마찬가지로 교사와 교사 양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진정한 가톨릭 교사는 가톨릭 학교의 갖아 본질적인 요소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학문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관한 가톨릭 사범 교육을 받지 아니한 가톨릭 교사는 같로릭 학교에 있어서 자기들에게 _성된 과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또 자기 신앙을 실천하지 아니하는 가톨릭 교사는 가톨릭 학생들을 신앙생활로 인도할 수도 없다.
가톨릭 학교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가톨릭 교사들을 또한 채용 아니할 수 없는 사정이므로 가톨릭 학교에 있어서의 자기 책임 완수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그 뿐 아니라 모든 가톨릭 교사들은 각자가 비가톨릭 교사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모든 학생들에게 대하여 지도적 역할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니고 있어야 하겠다.
몇 명의 가톨릭 교사가 재임(在任)하여 가톨릭 학생들에게 두 세 시간의 종교 교육을 실시함은 가톨릭 학교 안에서 가톨릭 학새읃ㄹ이 이단적 또는 반그리스도교적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상할 수 없다. 이것이 <요안> 23세 교황이 가톨릭 학교 밖에 있는 가톨릭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설립하여 그들을 완전히 효과적인 사도직으로 교육할 것을 요청하신 이유이다.
현재의 실정으로는 우리 가톨릭 학교들이 역대 교황들이 요청하신 바의 목적을 충족히 이해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가톨릭 교사들과 학생들이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의 빛나는 중심이 되도록 그들의 열심을 강화(强化)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