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네게 평화함을 주시는 사정을 너 과연 오늘이라도 깨달으면 다행하련마는……』(루가 19장 42절)
오늘 성경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때에 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수일전 죽어 사흘이나 지나 장례까지 치룬 <나자로>를 부활시켰으므로 이 놀라운 영적이 전파되자 그때 「빠스가」 첨례를지내려 각 지방에서 모여든 수만군중들은 열광적 환영으로 그를 맞이하여 뫼시고 「에루살렘」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념하는 첨례가 곧 성지(聖枝)주일인데 오늘 성경의 사기(史記)는 성지주일 다음날 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번 「예루살렘」에로 올라오신 후부터는 죽으시는 날까지 낮에는 성전(聖殿)에서 백성을 가르치시고 저녁에는 「제세마니」산장(山莊)에 머무시면서 기도를 올리시는 것을 일과(日課)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백성들을 가르치신 후 산장으로 돌아오시니 때는 늦은 오후였읍니다.
금박(金箔)으로 입혀진 성전지붕에 석양(夕陽)이 반사되어 찬란히 빛날 때 문제(門弟)들은 그 호화로운 광채에 황홀하여 성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만족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게서는 반대로 눈물을 흘리시면서 도성(都城)을 바라보시며 이르시대 『슬프다 네게 평화함을 주시는 사정을 네 과연 오늘이라도 깨달았으면 다해아련마는 지금은 다 네 눈 앞에 가리웠도다. 대저 때가 장차 이르매 네 원수들이 너를 에워 진(陳)을 치고 가두며 사방에로 너를 핍박하며 너와 및 네게 있는 자녀들을 따에 거꾸러치며 돌 하나라도 돌우에 남겨두지 아니하리니, 이는 다 너를 돌보시는 때를 깨닫지 아니함이니라.』하셨읍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적중(適中)되었으니 당신이 떠나신 후 40년이 못되어 「로오마」군의 마제(馬蹄)가 「예루살렘」을 짓밟았고 성전마저 불사러버렸던 것입니다. 그후 성전을 재건해서 그리스도의 예언(豫言)을 뒤집어 엎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능욕해보겠다는 심사로 <율리아누스>라는 배교(背敎)한 황제(皇帝)가 군대를 보내어 성전을 재건하려 했으나 지진(地震)이 일어나 재건은 고사하고 바탕조차 엉크러지고 말았으니 예수님 말씀대로 돌우에 돌이 남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윤곽마저 찾을 길 없이 되었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해 위에 있을 수 없는 가장 비참한 사태인 멸망을 예고하셨고 또 그 예언은 적중되었읍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이 멸망의 참혹한 정경은 인류 유사(有史)이래 없었고 또 없을 것입니다. 그 한 예를 들면 당시 백이십만이나 되는 군중들이 비좁은 「예루살렘」에로 모여들었을 때 「로오마」군대가 진격해서 창검과 화살에 마저죽은 군중은 날로 늘어가는데 그 시체는 성(城)이 포위되었으므로 성밖에 버릴 수도 없고 성안에는 파묻을 곳이 없었으므로 방치(放置)해 둘 수 밖에 없어 시체는 성안에서 썩기 시작했고 썩은 시체로 말미암아 전염병이 창궐했고 또 식량마저 결핍하여 굶어죽은 사람도 많았읍니다. 이 굶주림에 못이겨 어떤 여인(女人)은 제 자식을 죽여 구어먹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도 끔찍하게 지겨운 일이어늘 자기 자식을 구워먹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읍니까? 이것이 소위 『천주의 간선하신 백성입내』하고 뽑내던 「유데아」인의 소행이고 보면 더욱 기막히게 참혹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그리스도의 예언하심과 그 실현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묵상해야 하겠읍니까?
그것은 천주의 성총을 헛되이 저버리면 누구나 또 어느 국가나 민족도 「유데아」인들과 같은 운명을 진다는 것입니다. 천주의 성총의 자비는 무한한 것이나 이것을 매양 저버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천주의 보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사회서도 남에게 베푼 사랑의 도(度)가 크면 클수록 그 사랑이 배반되었을 때 느기는 고통은 큰 것이오 고통이 크면 클수록 거기대한 보복도 큰 것입니다. 그러면 천주께서는 「유데아」 민족과 「예루살렘」을 사랑하셨던가?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유데아」인을 간선하신 분은 누구이시며 성전건립을 일일이 지도하신 분은 누구이었읍니까?
오늘 성경에도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께서 어느 도성의 함락을 보고 우르신 것입니까? 「예루살렘」의 멸망 뿐입니다. 그것도 멸망하는 정경을 목도하시고가 아니라 예견(豫見)하시고 울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는 「올리와」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실 때 피땀이 솟아 흐르기까지의 고통을 느끼셨건만 울으셨다는 기록은 없읍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고는 눈물지어 울으셨던 것입니다. 이만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고국과 그의 수도와 그 성전을 얼마나 아끼셨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성전에 비해 우리 영혼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어떠한 성전이라도 비록 그것이 상아를 깎아서 세운 진주알에 은모래를 섞어 벾을 바르고 금으로 지붕을 덮었다 해도 지성(知性)과 의지(意志)와 자유를 가진 한톨의 영혼볻 가치있을 수도 없고 아름다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영혼보다 훨씬 값싼 성전의 멸망을 우셨다면 우리의 영혼의 멸망을 보시고 얼마나 더 애닲어하실 것입니까?그것도 한두번의 실수로서가 아니라 「유데아」 민족을 돌보시듯 몇번이고 몇번이고 보살폈으며 결국은 멸망의 길을 자진(自進) 나섰을 때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때를 헛되이 저버리지 마십시다.
朴루수 神父 (대구 天主座본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