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想(수상)] 外遊落穗(외유낙수) 生活樣式(생활양식)의 對照(대조)
佛(불)·카나다·北美(북미)의 印象(인상)들
발행일1961-06-04 [제281호, 4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벌써 십년 전의 일이다. 6.25라 하면 누구나 새삼스럽게 뼈저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외유생활도 이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한 가지를 덧붙여 생각하게 된다. 괴뢰군의 총뿌리를 헤치며 구사일생으로 서울에서 빠져나와 대전으로 마산으로 피란살이를 하다가 결국 부산에까지 가서는 조국의 마지막 위기를 물리치기 위하여 몇몇 동지들과 함께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평양에까지 북진했다가 후퇴하여 군의 복무를 마치고 모교로 돌아갔다.
모교 친구들은 그새 제주도로 피난했다가 거기서도 한라산 공비들에게 제2의 6.25를 맞나 호통을 당하고 부산영도에 쫓겨와 거기서 자리잡고 학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몇달을 지나니까 H학장이 나와 다른 세 명을 불러 불란서에 유학을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지금 휴전설이 한창 떠돌고 있기는 하지만 동거동락 해오던 친구들을 난국에 남겨두고 떠나가는 것이 섭섭하게 생각되었다. 웃 어른 의견이고 또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의외에도 모든 수속을 재빨리 마치고 목적지 「프랑스」로 향하게 되었다.
일본에까지는 서북항공사의 여객기로 갔는데 거기서 탄 「프랑스」 배는 일등과 이등실이 있는 호화선이였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프랑스」에서부터 삼등도 아닌 사등표를 이미 사보냈기 때문에 배 밑바닥의 창고같은 데서 귀국하는 프랑스 쫄병들 그리고 하급노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국에서 생명을 바치며 적군과 싸우는 고국의 일선군인들을 생각하면 그나마도 낙원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정이 들면 어디나 내 고장이 된다더니 이런데서도 한달을 지나니까 제법 재미있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뜨하지 아니한 무산노동자들의 생활과 심정도 어느 정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열개월 간의 지루한 여정을 풀고 「프랑스」의 「릴」 신학교에 자리잡고 선진국인 이나라 사람들에게 배우게 되었다.
이 나라에 맨처음 발을 들여놓자마자 깊이 느낀 것은 우리를 도와주기 보다도 미족적인 우월감에서 우리를 무시하고 지배하려 드는 고구에 있는 외국 사람들 보다 전연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하고 모든 것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신학교에서는 상급생 하나를 개인교수로 정해주고 모든 방면에 있어서 지도해주었다. 그래서 어학이나 다른 학과에 있어서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쾌활하고 모든 면에 있어서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간단하고 요령있게 모든 것을 처리하기를 좋아하며 그들의 머리는 조직적이며 수학적이어서 사물을 물 셀 틈 없이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특히 경제적 부문에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자기의 것은 극진히 아끼고 경개하는 그 비례로 남에 것에 대해서는 일제 손을 대지 않으며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 외에는 공짜라고는 바라지도 않는다. 친척간이라 할지라도 없으면 차라리 구걸을 할 망정 서로 신세를 지기는 싫어한다. 이들은 있다고 흥청거리지 않으며 없는 이들도 절제있고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원체 자연적인 토대로 있겠지만 이러한 철저한 경제관념 때문에 우리들 보다 앞섰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관념은 구주와 「카나다」와 북미를 다 돌아 다니며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이 있거나 없거나 흥청거리고 낭비하고 허세를 좋아하는 이들은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구주사람들에게 또 한 가지 배울 점은 인격의 존중 혹은 인간성의 존중이었다. 물론 이미 말한 경제관념이 여기에 뒷받침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은 우리 인간성의 활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대문에 신성하며 그 결과로 얻은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관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등에서 후진국가의 원조나 고아들의 문제가 나오면 한 벌 밖에 없는 옷이라도 벗어보낼 수 있는 성의와 용기를 그들은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과 그 인격을 존경하기 때문에 개인 없는 전체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극히 개인주의기는 하짐나 크리스챤적인 박애주의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독선으로 흐를 위험을 엿볼 수 없었다.
나는 이 모든 생활양식을 대조해보기 위하여 「카나다」와 북미를 귀국 코-스로 잡았다. 그런데 「카나다」와 북미의 인상은 조숙한 키 큰 소년과 같이 어딘가 풋내를 풍기고 있었다. 기계문명에 있어서는 서구에 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서구사람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들이 이만큼 쉽게 발전을 한 것은 자연적인 자원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들의 자라나려는 욕망과 굳센 노력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진국가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들에 못지 않는 결심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에게로부터 공짜를 바라지 말고 자력으로 삶을 이룩하며 합덕심을 가져 타인을 도아 사회의 기생충이 되지 말아야 될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지향해야 될 줄로 생각한다.
_者 가톨릭大學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