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納凉] 시원한 이야기
발행일1960-08-14 [제241호, 4면]
여름이 왔다.
삼복(三復)이다.
질금거리던 비가 개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맹위(猛威)를 떨친다. 정남지다. 바람도 숨을 거두고, 바야흐로 땅위의 온갖 것이 질식 상태에 빠졌다. 가로수 잎이 축 늘어져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아, 더워.』
구루마꾼이 나무그늘로 간신히 구루마를 대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벙거지를 벗는다. 이마와 뺌과 목에 구슬땀이 뚝뚝 떨어진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가슴이 금새 삐개질듯이 벌름거린다.
『아아, 목말라.』
나의 조부(祖父)께서는 근엄한 분이었지마는 때때로 우스운 말씀을 잘 하시었다. 그 분은 내가 나이 어릴때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마는 지금도 몇가지는 내 기억에 생생하다.
삼복이었다.
집안식구가 모두 혹심한 더위에 시달리는데 조부님께서 우스운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얘들아, 너희들 더우냐?』
조부님께서는 싱글싱글 웃으시며 식구들을 둘러보시었다. 식구들도 미소를 지으며 조부님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더웁거던 좋은 수가 있다. 지난 겨울에 골방에서 솜이불을 덮고 누웠더니 이불 모소리로 찬 바람이 솔솔 스며드는데 어떻게 추운지 그만 사지가 오그라드는 것 같더구나. 어디 지금 그렇게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말씀을 마치고는 조부님께서는 너털웃음을 웃으시었고, 식구들도 모두 따라서 웃었다. 조부님의 이마에도 땀이 흠뻑 솟아 있었다.
더위를 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실질적(實質的)인 것 만을 생각한다. 즉 외부 육신의 냉각에만 열중한다. 그러나 그것은 막고 또 막아도 끝이 없다. 결국은 내부에서 막아야 한다. 나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으례 목숨의 근원을 생각한다. (나는 살아있다. 주의 섭리로 이렇게 공기를 마시고, 태양을 쬐며 버젓이 살아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는 공연히 기쁨이 옷아오른다. (내가 사는동안 여름이라는 계절은 과연 몇번이나 맞이할 것인가?)
결국 여기에 결론이 이르면 더위도 금새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한다. 더위에 시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주의 크나큰 은혜가 아닌가?
그러다가 문득 산들바람이 일어난다. 가슴께로 차거운 기운이 스며든다.
『아아, 시원하다.』
나의 마음은 금새 저 화안한 태양빛처럼 풍부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히 차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