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포] 서울 아현동본당
당면의 목표는 새 성당 짓는 것
예배당건물을 임시성당으로 사용
주일에는 6차례 미사 드려도 밖에서 참례하는 이
발행일1960-08-21 [제242호, 3면]
아현동 마루턱에서 「아현 로타리」를 지나 신촌가는 도로에 나서면 「굴레방리」라는 데가 있는 동북(東北)쪽으로 북적거리는 시장골목 통해 백메타 가량 따라가면 빨간 벽돌이 우뚝 솟아 있다.
고불고불 골목길 돌아 빈터를 지나 또 층층대를 올라보니 기자와는 전부터 안면이 있는 장님 한 분이 반가이 맞이한다.
그러나 공교롭게 신부님은 계시지 않고 회장님에게 이 본당 사정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이 본당 <요왕> 장(張丙龍) 신부님은 1957년 3월에 이곳에 첫 본당신부로 부임하셨으나 집 한 간이 없어서 북아현에 사는 교우 <아오스딩> 김(金馥應)씨의 30평 가량 되는 2층 건물을 빌려서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당신의 기거(起居)는 <누까> 김(金光錫)씨 댁에서 지내시다가 그해 6월 25일 「감리교」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현성당 건물을 싯가 1천2백만환으로 구입하셨다는 것이다. 성당의 건평은 48평밖에 안되어서 약현(中林洞)본당에서 분가(分家)한 그당시에도 2천4백명이나 되는 교우를 다 수용할 수 없어 주일이면 미사가 몇대 있는데도 미사때마다 밖에서 참례를 해야할 신자들이 많았으며 또 성당은 그렇게라도 마련되었으나 사제관이 없어 신부님의 이사는 두달후인 8월달에 가서야 하게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본당 장 <요왕> 신부님은 이곳에 부임되신 그날부터 너무나 많은 고초를 겪으셨기 때문에 회장님 이하 여러 교우들이 민망할 지경이었다는 이야기.
현재 교우 총수는 3천2백명이며 주일미사는 6대나 있어야 되므로 본당을 맡지 않은 다른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몇대 드려주시므로 도와준다고 한다.
예비자 수는 남녀 합해서 5십명가량 되는데 성가회 수녀 두 분이 이들의 지도를 담당해 주신다로 하며 장 신부님이 오셔서 3년이 지난 오늘날 증가된 신자수는 1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올라운 발전이다.
지금 이 본당에서도 다른 안정되지 못한 서울 변두리의 본당들과 같이 새 성당을 마련하려고 하는 중인데 본당 사무실에는 성당 설계도가 걸려있기에 보니 지하실이 있고 1층엔 사무실 사제관 회의실 등으로 쓰고 2·3층을 성당으로 사용하게 되어있는데 건물 건평은 1백4평이며 철근콩크리트로 지을 예정으로 이 설계는 안동(安東)과 혜화동(惠化洞)성당을 설계한 이희태씨가 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본당신부님은 이 성당을 짓기 위하여 날이면 날마다 동분서주 하시면서 여러곳에 원조를 구하시고 있는 중이신데 회장님의 말에 의하면 7·29 총선거가 끝나면 곧 착공할 거라고 한다.
「가톨릭 액숀」은 장소관계로 활동이 여러모로 장애를 받고 있어 뚜렷한 일은 못하고 있으나 「레지오 마리에」가 조직되지 못한 반면에 「매괴회」가 있어서 초상관리자로서 상가(喪家) 일을 도맡아 일보고 있어 일반의 평이 매우 좋다고 하며 남자회장님은 열 분 여자회장님은 두 분인데 이 여자분들의 활동이 놀랄만한 것이라고 한다.
합창부에는 4부로 나뉘어서 성인(成人)반 중고등반, 주일학교 선생반, 아동반으로 각각 그 직능을 발휘한다고 하며 기자가 성당에 들어설 때 중·고등반이 성당 안에서 풍금에 맞추어 「그레고리안」성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 아현동본당도 하루 속히 새 성당을 마련하여 활발한 교회활동을 더욱 신나게 하기를 빌면서 기자는 회장님과 하직하고 어두어지는 한 골목길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