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NC】 교회법정에서 열성(列聖) 문제를 논의(論議)한 12명의 변호인단 중 11명이 평신도였다.
그들은 「수단」과 흑색 「벨베트」의 「소배기」를 입어 마치 사제나 고위성직자같이 생각되었으나 실은 12명 중 단 1명만이 신부이다.
기용된 11명의 평신도 변호인은 그들의 업적과 지식으로 인하여 공로표창을 받은 바 있는 「이태리」의 저명한 법률가이며 성무(聖務)는 현재로는 명예(名譽)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법정 변호인 지위의 근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천4백년을 거슬려 올라간다.
598년에 선교황성 <그레고리> 1세는 7명의 교회 변호인을 기용하셨고 오늘날에는 7명의 실무 변호인과 5명의 명예 변호인이 참석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법정 변호인은 어느 특정인의 시복(시福) 문제와 열성(列聖)문제의 진첩을 우히ㅏㄴ 공개 법정에서 변호한다.
1961년 1월16일에 그들은 「필라델피아」의 「레뎀프토리스트」(구세주회) <죤 노이만> 주교의 소송문제를 교황께 신청한 바 있다.
또한 교회법정 변호인은 오늘날 아직도 1340년에 선교황 <베네딕트> 12세께서 세우신 교황령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다.
규정에 의하면 1870년 이전부터 교회법정 변호인은 「로오마」대학의 총장 자격으로부터 선출되도록 되어 있었고 그 후 대학은 「이태리」 국가에 의해서 그와같은 특전이 폐지되었다.
교황은 변호인들이 제출한 3명의 명단에서 선출하여 새로운 변호인을 임명하시고 신변호인은 「이태리」 내의 가장 저명한 법률학자급에서 선출되게 된다. 그는 신사이며 훌륭한 그리스도교인이라는 것이 결정된 후 신앙과 도덕에 관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변호인은 「성녀 아녜첨례」날에 교황에 의해서 강복받는다. 또한 「성 베드루 첨례」날 저녁에 재강복을 받고 교회법정 변호인은 엄숙한 의식 때는 「소배기」를 입을 권한을 갖게 된다.
최근까지 변호인단 단장으로 활약한 당년 71세의 <카밀로.콜사네고>씨는 과거 22년간을 변호인으로 있었다.
그는 1922년서부터 1930년까지 「이태리 가톨릭 악숀」의 회장으로 있었고 「파시즘」과 열렬히 투쟁해왔다. 현재까지 가장 유명했던 변호인으로는 1740년 선교황 <베네딕트> 16세 때에 변호인이 된 <프로스페로 람베르띠니>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