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編輯者註】 「Vox Catholica」의 뜻은 「가톨릭 교회의 소리」라는 뜻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70노인 원수(元首) <투루히요>가 지난 주간 총맞아 죽었다. 바로 4개월 전인 2월에 그 나라의 6위 주교들이 『교회의 은인』 칭호를 달라는 그의 요구를 거절하고 천주께서 공평히 갚으시리라는 서신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투루히요>란 어떤 사람인가?
31년 전에 그가 처음으로 그 나라의 정권을 장악했을 때, 「도미니카」 공화국은 가난하고 혼란한 나라였다. 그는 경제 문제를 안정시키고 모든 사람에게 정규적인 직장을 주었고 도로와 큰 공장과 현대적 학교와 병원을 건설했다. 그러니 이 나라의 번영은 확실히 <투루히요>의 덕이다.
그렇다손 그런 일을 가지고 그의 독재적 정치제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1930년 이래 그는 자기의 여당 이외의 모든 정당을 없이해 버렸다. 정부의 그릇된 정책을 큰 소리로 말해보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반듯이 투옥되었고 사형을 당하기가 일수였다. 작년에 수천명이 반정부 혐의로 투옥되었다.
자유에 대한 그렇게도 혹독한 탄압을 반대하여 교회가 아무일도 안했던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교회는 「라틴 아메리카」(南美)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틀림없이 <크리스토프 콜름브스>의 유해가 「라틴아메리카」
에서 역사적으로도 최초의 주교좌인 수도 「산토 도민고」의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3백만 인구 중 96%가 가톨릭이다. 사제가 315명에 불과한 만큼 신부 한 명이 9천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성직자가 그만큼이나 부족한 실정을 보아 종교생활이 국민들 마음에 뿌리가 깊지 못함이 뻔한 사실이다.
그러니 교회는 그 구성이 약하면서도 인권에 대한 정부의 강압을 반대하는 저항을 잊지 않았다. 1960년 1월31일 모든 주교들이 서명하여 전국의 모든 교회에서 공개된 교서는 정부 당국ㅇ게게 보내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국권(國權)에 앞선 몇 가지 권리를 가졌다. 모든 인간의 권력을 뭉치드라도 이 모든 권리의 자유행사를 방해하거나 억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양심 자유의 권리, 언론 자유의 권리, 집회 자유의 권리가 그것이다』 주교들에게 대한 <투루히요>의 답변은 아무런 비난이 없는 공손한 서한이었다. 그러나 분규를 일으키기 위해 그 주교들의 공동교서의 책임자로 생각된 교황대사가 고발되었다.
어느날 저녁에 정부의 고관들과 <투루히요> 자신이 교황대사관에 나타나 그 교황대사의 날조 서명이 있는 교황대사관 만찬 청첩장을 내놓았다. 교황대사 <차니니> 주교는 자기가 도무지 계획도 안했던 만찬회의를 벌렸다고 대답하라는 강박을 거절했다. 교황대사는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푸에트로 리코」를 경유하여 「로오마」로 떠났다. 그는 자기 직무처로 돌아오지 않았다.
<투루히요>가 예고 없이 돌연히 방문왔을 때 자기를 위하여 종을 미처 치지 못했고 창미사 봉헌을 못한 50여 명의 사제들이 추방령을 받고 즉시에 그 나라를 떠나야 했었다.
1960년의 온 한 해가 정부 대 교회의 공개투쟁의 해였다.
그런 이유로 금년 초에 계획된 가톨릭대하가 건설비로 4백만 「딸라」 계획된 성모 성당 건축비로 50만 「딸라」를 정부가 보조할 계획이라는 <투루히요>의 예고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상으로 교황만이 내릴 수 있는 칭호인 『교회의 은인』이라는 공식 칭호를 달라고 그가 주교들에게 요구했다. 사실상 중세기 초엽 이래 이 칭호를 받은 예가 없는 것이다. <레일리>주교가 「라디오」 강론에서 <투루히요>에게 칭호를 주교단이 거절했음을 공포했을 때, 그의 강론을 방송국이 끊어버렸다. 그때부터 또 계속될 투재으이 증조가 다시 나타났다.
지난 주간에 <투루히요>가 죽었을 때 그는 「로오마」제국의 초엽 이래 볼 수 없는 개인 숭배의 종교를 남겼다. 그는 「산토도민고」를 「시우다드 투루히요」(투루히요시)로 개칭했다. 38「메타」 높이의 자기의 기마상(騎馬像)은 세계에서 제일 큰 마상(馬像)인바 그것은 그 나라 전국에 세운 2천개의 <투루히요> 기념상의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도시에 있는 음수천(飮水泉)에는 『신(神)과 <투루히요>가 이 물을 너에게 보내노라』라는 각자(刻子)가 있다.
<투루히요> 문중의 전원이 그 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아들 하나는 겨우 9세 때에 육군대장이 되었다. <플러르 데 오르>(황금 꽃)라는 맏딸만이 일곱 번이나 추잡한 결혼을 차례로 했다는 이유로 집에 갇혀있다. 자기 문중 소유의 색칠 공장의 생산을 증가시키고자 <투루히요>는 정부의 명령으로 집집마다 해마다 한번씩 새 칠을 하게 하였다.
자기가 스스로 붙인 『조국의 은인 겸 신국(新國)의 국부』라는 칭호를 지닌 이 독재자는 이제사 망했다. 정권을 자기 문중 안에 국한시키고자 그의 아들이 자기 아비의 자리를 계승했다.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나라에서 인권이 재수립되어 시민들이 자유를 얻게 되는 경우에 어찌 될 것인가?